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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15. 2020

누군 몰라서 안 넣었니 순대볶음

동생만큼이나 짧고 강렬했던 맛의 비법

"이거였구나! 바로 이거였어."

나도 모르게 소릴 질렀다.


'에이, 별거 아니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그렇게 궁금해했네.'


그런데...


"야. 겨우 그걸 비법이라고 말한 거야? 그걸 누가 몰라서 안 넣었냐? 건강에 안 좋으니까 그렇지."

라며 앞에 두고서 따질 수가 없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나 되었다.


동생은 젊은데도 요리를 잘했다.

그것도 아가씨 음식이 아니라,

걸쭉한 아저씨 음식들을-순대볶음, 불낙 전골, 냉면, 부대찌개 등.

동생이 요리하는 장면을 보면 신기했다.

깡마른 손목을 휘휘 잘도 돌렸다.


하루는 외출했다 돌아오면서 순대 3인분을 사 가지고 왔다.

와락 비닐봉지를 뜯고, 나무젓가락을 순대에 대려는 순간, 동생 이

".잠깐만" 하는 것이다.

내가 짜증을 내며 "왜?" 하자,


"가만있어봐. 내가 순대볶음 해 줄게."

순대를 들고 부엌에 가서는 냉장고에 있는 당근, 양파, 깻잎, 고추, 양배추를 꺼냈다. 그 재료들을 착착착 채로 썰더니 프라이팬에 넣고 볶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순대를 넣더니 온갖 양념을 하고는 순식간에 침이 고일만한 순대볶음을 만들어 냈다.


요리에 입문하기 전이었던 게는 놀라울 뿐이었다.

까만 순대 몇 알이 단 몇 분 만에 지글지글 맛있는 요리가 되다니!

감탄하면서 비법을 물어봤지만 미소만 지었다.


하루는 동생이 끓여준 부대찌개가 밍밍하다고 했다.

그러자 냉큼 부엌으로 가져갔다가 다시 가져왔는데 맛이 달라져 있었다.

어떻게 금세 맛을 바꾸었느냐고 물었다.

마치 마법의 지팡이를 휘두른 것 같아서.

동생은 또 미소만 빙긋했다.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내 손으로 아이 둘을 먹이고 키워냈다.

이제 내게는 주방이 더 이상 화학실험실이나 마술쇼를 하는 곳이 아니다.


그리고 요리를 많이 하면서 알게 되었다.

동생이 내 혀를 단숨에 사로잡던 요리 비법을.


그건 하얗고 반짝이는, 화학조미료였던 것.

요리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있던 나는 동생이 마법을 부리는 줄 알았는데.

하지만 화학조미료도 요리 못하는 언니 앞에서 뻐기기에는 충분했다.


알고 나니 허무하다.

어릴 적 신체 절단 마술쇼를 보면서 경악했다가 어른이 된 후 비법을 알게 된 처럼



그래도 괜찮다.

대신 견딜 수 없는 건,

그동안 대단한 비법 인양 으스댔던 데 대해서 따질 데가 없다는 것.

이럴 때마다 내가 눈을 흘기면 동생이 짓던, 넉살스러운 표정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감탄하던 동생의 요리는

딱 동생처럼 넉살스러운 맛이었다. 달고 짜고 맵고,

가벼이 혀를 훑고 지나가는 짧고 강렬한 맛.



동생의 일생도

그렇게나 짧게 훑고 지나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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