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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공동체, 조선의 따뜻한 마음

유럽 선교사가 발견한 조선인의 덕성

by 김형범

19세기 조선에 처음 발을 디딘 유럽 선교사들은 조선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습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 사회는 가난하고 비효율적이며, 때때로 탐욕스럽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시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오랫동안 조선에서 활동하며 사람들과 함께 지낸 선교사들은 조선인의 따뜻한 마음과 공동체 정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프랑스 선교사 마리 다블뤼는 조선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나눔의 문화와 이웃을 위한 헌신적인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조선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화재가 발생해 집을 잃은 이웃이 생기면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함께 도왔고, 심지어 집을 다시 지을 수 있도록 물질적, 정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도리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홀로 남겨졌을 때, 친척이나 이웃이 그들을 거두어 길러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는 혈연을 넘어 사회 전체가 하나의 가족처럼 서로를 돌보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먹을 것을 나누는 일 역시 조선인들에게는 자연스러웠습니다. 밥을 짓고 있던 사람이 지나가는 이에게도 나눠 주고, 일꾼들이 들판에서 식사할 때 지나가는 행인에게도 음식을 권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기꺼이 응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러 새로 밥을 지어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잔치가 열리면 이웃과 친지를 초대해 함께 즐겼고, 손님을 맞이할 때는 자신이 가진 최상의 대접을 하려 애썼습니다. 이는 조선 사회가 가진 깊은 환대의 정신과 공동체 의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유럽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다블뤼 신부는 조선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서신에 기록하며, 오히려 유럽인들이 도덕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개인주의가 강해진 유럽에서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식을 버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조선에서는 가난을 이유로 아이를 포기하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그는 유럽인들이 조선인의 나눔과 공동체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선인의 이러한 덕성은 단순한 미담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사회적 가치였습니다. 유교적 윤리와 마을 공동체 중심의 생활 방식이 결합되면서, 서로 돕고 나누는 것이 삶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물론 현대 한국 사회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나눔과 환대의 정신이 남아 있습니다. 재난이 닥쳤을 때 전국에서 자발적인 기부와 봉사가 이루어지고, 가족이나 친척뿐만 아니라 친구나 동료끼리도 서로를 돕는 문화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다블뤼 신부가 남긴 기록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지금도 조선 시대의 나눔과 공동체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가?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점점 강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서로를 돕고 나누는 가치가 우리 안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조선인들이 자연스럽게 실천했던 나눔의 미덕은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가 지켜가야 할 중요한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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