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일본, 기억의 방식이 만든 두 개의 국가 정체성
전쟁은 단지 물리적인 파괴만을 남기지 않습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 국가와 사회가 그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미래와 정체성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가해의 역사를 가진 국가일수록, 그 과거를 어떻게 다루는지는 단순한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자 문화적 태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과 일본은 하나의 뚜렷한 비교 사례가 됩니다.
두 나라는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의 중심 가해국이었습니다. 독일은 나치 체제 아래에서 유대인을 포함한 수많은 민간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했고, 일본은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하며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전쟁 이후의 서사 전략은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독일은 전후 분단이라는 정치적 현실을 안고 있었지만, 서독과 동독 모두 어느 시점부터는 나치 전범에 대한 책임을 국가적 차원에서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전후 몇십 년 동안은 분명히 숨기고 외면한 시기도 있었지만, 독일 사회는 결국 ‘우리가 가해자였다’는 인식 위에 국가 재건을 시작했고, 그 인식은 교육, 언론, 예술, 정치 전반에 걸쳐 제도화된 기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베를린 도심에 세워진 유대인 학살 추모비,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루어지는 홀로코스트 교육, 대통령의 과거사 사죄 연설 등은 단지 상징적인 행위가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서 반성이 내재화된 사례입니다. 독일은 자신을 더 이상 피해자나 외부 음모의 희생자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해자였던 우리가 어떻게 책임을 지고 다시 인류 보편의 가치를 회복할 것인가’라는 서사를 통해 자신을 설명합니다.
반면 일본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전쟁 후 미국의 보호 아래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은 ‘전쟁 책임’을 국가 정체성에서 흐리거나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위안부 문제, 난징 대학살,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는 몇몇 정치인의 사적인 언급에 그쳤고, 제도적으로 기억되거나 교육된 적은 드물었습니다. 교과서에는 “진출”, “자위” 같은 표현으로 침략을 모호하게 바꾸었고,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가 참배하는 행위는 과거를 미화하거나 은폐하려는 태도로 읽히곤 했습니다.
일본 사회는 전쟁 피해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말하지만, 전쟁 가해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외면합니다. 그 결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의 과거사 갈등은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고,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국가’로 완전히 자리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일본은 피해자의 이야기만 기억하고, 가해자의 서사는 삭제하거나 희미하게 처리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선택한 셈입니다.
이 차이는 결국 국가 정체성의 방향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독일은 과거를 직시하고 반성함으로써 도덕적 신뢰를 회복한 국가가 되었고, 그 반성은 유럽 통합과 국제 외교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는 이미지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역사 앞에서 책임지지 않는 국가라는 인상을 여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억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곧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기억을 해체하거나 왜곡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책임과 반성의 언어로 재구성했습니다. 일본은 기억을 희석하거나 회피함으로써 반복되는 논란과 외교적 갈등 속에 여전히 서 있습니다.
결국 국가의 서사는 선택의 결과입니다. 고통을 인정하고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가, 아니면 그 고통을 외면하고 침묵으로 덮는가. 그 선택은 국민이 어떤 나라에 살게 될지를 결정합니다. 기억은 국가의 얼굴이며, 책임은 그 기억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어떤 국가가 더 건강한 미래를 향해 서 있는가는, 그들이 과거를 어떻게 말하고 기억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