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사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사람이다. 특히 사회문제를 다루는 탐사보도를 좋아해 웬만한 프로그램은 다 챙겨봤다. 대학 시절에는 페미니즘 수업을 듣고 관련 서적을 읽으며 친구들과 토론도 자주 했다. 사회 감수성이 높은, 나름 ‘똑똑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 뉴스 속 피해자가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분노하던 ‘데이트 폭력’의 장면 속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괴감이 밀려왔다. 왜 몰랐을까.
그렇게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 일에는 무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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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의 순간: 사소한 대화가 공포로 변하다
그와의 관계는 연인이자 동료였다. 업무 대화 중 사소한 의견 충돌이 점점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그는 내가 한 말을 ‘핑계’로 받아들였고, 화를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퍼부었다. 핸드폰을 내던지는 소리에 차 안은 정적과 긴장으로 가득 찼다.
잠시 차를 세운 그는 다시 돌아와 위협적인 말을 내뱉었다.
늦은 밤 낯선 도로에서 나는 그저 두려웠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지금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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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맞은 거랑 똑같아”
그날 이후 나는 그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피했다. 그의 분노는 여전했고, 물건을 세게 내려놓거나 발로 차며 위협적인 행동을 반복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렵고 무서워 그에게 말없이 언니 집으로 도망쳤다. 모든 일을 이야기하자 언니와 형부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폭력이야. 너 맞은 거랑 똑같아.”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다.
이건 단순한 다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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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점점 진화한다
처음에는 고성, 그다음엔 물건 투척, 욕설과 협박으로 이어졌다. 폭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위를 높였다.
그는 늘 “네가 그렇게 말해서 내가 화난 거잖아”라며 폭력의 원인을 내 탓으로 돌렸다.
그 말은 가스라이팅이자 통제였다.
나는 그에게 “큰 소리에 공포를 느낀다”라고 수차례 말했지만, 그는 내 감정보다 자신의 분노 해소가 우선이었다. 그때 확신했다. 이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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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파트너를 피해야 하는 이유
폭력은 멍든 몸뿐 아니라, 마음속에 남은 공포와 자존감의 붕괴까지 포함한다. 만약 당신의 연인이 다음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단호히 떠나야 한다.
• 폭력의 단계가 높아지는 사람: 고성 물건 투척 욕설 협박으로 이어진다면 관계의 끝이 다가온 신호다.
• 폭력의 원인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사람: “네가 날 화나게 했다”는 말은 변명의 형태를 한 폭력이다.
• 상대의 감정적 경계를 무시하는 사람: “무섭다”는 말에도 반복되는 폭력은, 관계를 지속할 의지가 없는 증거다.
폭력은 ‘한 번쯤’으로 끝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경고는 늘 초반에 온다. 다만 그 신호를 알아차리느냐, 무시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돌아보면 그의 폭력성은 이미 곳곳에서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설마’, ‘아닐 거야’ 하며 외면했다.
우리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그 미묘한 감정을 무시하지 말자. 몸은 마음보다 먼저 위험을 감지한다.
우리 안의 그 예민한 감각, 그 데이터가 말해주는 신호를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