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ang Oct 20. 2024

기준 1. 상대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말의 진실은? 


몇 년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괴짜인 지인이 자기가 아는 친구들을 모아 독서모임을 가장한 파티를 했다. 10여 명의 청춘들이 모였는데 직업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프리랜서 방송인, 한의사, 방송국 PD, 회사원, 언론고시생, 자영업자 등

그중 한 사람과 몇 년 간 종종 연락하는 친구로 지내다 사귀게 됐다.


사귄 후에 알게 된 서로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독서모임이라는 취지에 맞게끔 책을 열심히 읽어서 참석했고 그는 책을 열어보지도 않다. 까칠한 인상에 말하는 내용까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서 관심도 없었다. 그 또한 나를 보면서 "되게 따지네." 이런 생각을 했다고... 


당시 나는 NGO 활동가였던 나는 직업적으로도 개인적인 관심사와 성향 등의 이유로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연애 초기, 다른 친구들과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다. 식사 중 당시  남녀 성 갈등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고 교양수업으로 여성학 수업도 들었던지라, 자연스럽게 그 이슈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했다. 


저녁식사는 잘 마쳤고 친구들이랑 헤어지고 남자친구와 둘이 산책을 나섰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아까 얘기한 거 있잖아. 자꾸 페미니즘 같은 거 얘기하지 마. 너 그러면 사람들이 너 이상하게 생각해."라는 얘기를 했다. '내가 말하다 실수라도 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선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말을 끝으로 그의 조언은 끝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말한 건 없었다. 단지 나는 내 생각을 얘기했고, 같은 자리에 있던 누구에게도 내 의견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의 말처럼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고,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게 문제라면... 그동안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나의 친구들, 직장동료 등 지인들과의 내 관계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나는 내 생각을 말한 거야. 이상하다고 말하니까 기분 나쁘다."는 의사는 전달했지만, 불쾌한 기분의 원인은 불명확했고 해소가 되지 않았다. 


그 친구와는 2년 정도 만나고 헤어졌는데, 연애 초기에 아리송했던 그 부분이 결국 이별을 결정하는데 큰 이유였다. 돌이켜보니 "자꾸 페미니즘 같은 거 얘기하지 마. 너 그러면 사람들이 너 이상하게 생각해."가 아니라 본인이 이상하게 생각한 거였고, 나를 위한 다는 말로 본인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 것이다. 불편하고 불쾌했던 내 감정은 그거 없는 느낌이 아니라,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빨간 경고등을 켠 것이다. 


물론 서로를 위해 주고 받는 애정어린 조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의문이 드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볼 때는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이유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를 물어보는 게 먼저 인 것 같다. 연인을 존중하는 것,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것. 본인의 마음대로 재단하고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 내가 깨달은 좋은 파트너의 기준이다. 







이전 03화 30대 초반: 자발적 비주체적 연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