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과의 연애 안에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쌓인다.나는 그 연애를 통해 한 가지를 분명하게 배웠다.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결국 사랑을 할 줄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과 연애를 한 적이 있다. 외부 작업이 많아 늘 바빴던 사람이다. 어느 쌀쌀한 가을날, 저녁 무렵까지 혼자 작업하고 있을 그가 문득 떠올랐다. 적적하지 않을까, 추울 것 같다는 생각에 따뜻한 커피를 사 들고 그의 작업장으로 향했다. 받으면 좋아하지 않을까? 보고싶다!는 아주 단순한 마음이었다.
활짝 웃으며 입구를 들어섰지만 그의 표정은 예상과 달랐다. 고맙다는 말 대신 왜 왔냐는 짜증 섞인 반응이 돌아왔다. 나를 쓱 보더니 다시 일에 집중하는 그. 순간 민망했고 괜히 눈치를 보게 됐다. 더 머물고 싶지 않아 커피만 내려두고 자리를 나왔다.
나중에 그가 한 말은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커피를 사 온 이유가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커피를 들고 찾아오는 나 자신의 모습이 좋아서 그런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어느 날은 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불 조절을 잘못해 음식이 조금 탔는데, 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 점을 문제 삼았다.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아 다른 방으로 피했지만, 그는 나를 불렀다. 울면 상황이 더 격해질 것 같아 감정을 삼키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네가 다 망쳤어! 흰 도화지에 물감을 쏟아버린 것과 똑같아!"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느껴졌다. 연인을 위해 준비한 식사가 ‘망친 일’이 되는 순간, 나는 이 관계에서 나의 호의가 언제든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설사 흰 도화지에 물감을 쏟았다고 해도, 그 종이는 찢어버리고 새로운 장에 다시 그림을 그리면 되는 것 아닌가?)
아로마 오일을 사러 갔다가 그의 어머니께 드릴 오일을 하나 더 골랐다. 요즘 많이 피곤해하신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뵐 때 전해드리라며 건넸지만, 돌아온 반응은 뜻밖이었다.
왜 자기 어머니에게 잘 보이려 하느냐는 말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생각나서 고른 것이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라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쓰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설명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와의 연애를 돌아보면, 그는 나의 호의와 애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인간관계에서 상처가 많았던 사람. 하지만 그 상처를 보듬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서 한 행동 뒤에 다른 의도가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받는 느낌, 떠보는 듯한 반응 속에서 나 역시 많이 상처받았다. 기분이 좋을 때는 다정했다가도, 조금만 어긋나면 모든 해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어디에서 화가 나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 연애 동안 나는 유난히 많은 공부를 했다. 심리학 책을 읽고, 연애 관련 콘텐츠를 찾아보고, 사주 상담을 받고, 스트레스가 심해 명상 수업까지 들었다. 그만큼 답답했고,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남은 결론은 단순했다. 사랑에는 주는 능력만큼이나 받아들이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것. 사랑을 받을 줄 아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 관계에서 단단하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