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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ang Sep 29. 2024

20대 후반: 약도 없는 결혼병

"우리 다른 공간에서 같은 병에 걸렸었구나?"


하나뿐인 언니는 28살에 결혼해 바로 임신, 출산을 해 당연히 나도 그쯤이면 결혼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20대 후반이 됐음에도 여전히 결혼할 사람은 없었고 당시 만나던 연인과 결혼을 할 결심도 서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언니와 내게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하는지, 어떤 남자를 피해야하는지 자주 하셨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생활은 이상적이지 않았고, 아마 엄마는 아빠의 아쉬운 점이 없을 남자와 딸이 결혼하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 얘기를 하신 게 아닐까 싶다.


20대 중반 대학원을 졸업 후 비영리단체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연한 나의 계획상으로 20대 후반에는 결혼을 해야하니 본격적으로 결혼상대를 만나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NGO의 벌이라는 것이, 혼자 겨우 생활할 수 있는 정도라 종종 부모님의 지원을 받기도 하는 경제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시 나의 연인은 나보다 나이가 어린 대학생이라 가까운 시기에 결혼 할 적합한 상대도 아니었다.


다정하고 나를 많이 위해주는 친구였으나, 당시의 나는 '결혼' 그 자체에 꽂혀있었기에, ‘다정함’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너는 나랑 결혼할 상황이 아니지 않냐.” 며 이별을 고했고 그는 무척 황당해했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긴 서사가 있지만 그땐 그래야만 했고, 연애의 목적이 결혼이었다. 이 사람과 인생을 함께 하고 싶다가 아니라, 이 나이에 결혼을 해야만 했고 그걸 누구랑 해야 할지 찾아 헤맸다.  


부끄럽게도 20대 후반의 나는 이랬다. 좋아해서 시작하는 연애라기보다는 가까운 시일 내에 현실적으로 나와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다 보니 막상 나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좋은 파트너를 찾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나한테 맞는 사람이 아닌, 주변에서 주워들은 결혼 상대 기준들로 만들어낸 상상의 동물인 유니콘 같은 인물을 찾았다.  


이 격동의 시기가 조금 잠잠해진 무렵 십여 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결혼 상대를 찾아 헤맨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가만히 듣더니 "우리 다른 곳에서 같은 병을 앓았구나."라고 말했다. 약도 없다는 결혼병. ㅋㅋㅋㅋㅋ 너무 웃겨서 깔깔 웃었다. 그녀 또한 오래 만난 연인을 결혼 상대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이별했고 그 이별 후유증으로 수년을 마음 아파했다더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값이 가장 올랐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값어치가 떨어지는 케이크에 여성의 나이를 빗대는 표현이나 여성의 나이로 상품을 매기듯 표현하는 걸 꽤 자주 들으며 살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여성의 나이와 결혼의 상관관계가 내 무의식에 자연히 자리를 잡았고 서른이 되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서른이 돼도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과 여전했다. 결혼병의 증상은 잠잠했으나 한 번씩 찾아오는 불안함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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