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못한다는 것

2020년 가을에 쓴 글

by 선 p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으로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만남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만남이 사라지고 난 빈 자리에 컴퓨터와 동영상과 클릭질이 들어왔다. 화면과 자판을 사이에 둔 만남은 진짜 만남일 수 있을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차선이라고들 생각한다. 아마 나도.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잘 만나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며 수업을 준비한다.

그런데 어느날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떤 고퀄의 기술로도 전혀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눈빛, 온도, 기운, 우리 사이의 공기.... 그런 것들이 모니터로 전해질 수 있을까?

#1. 2학기 개학날 첫 수업, 고3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결석한 아이 이름을 확인하고 잠시 교실을 둘러보니 아이들은 전혀 수업을 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조심스레 물었다. “얘들아, 교과서 있니?” 대답없이 나를 쳐다본다. 잠시 기다려본다. 아이들은 미동이 없다. 또 잠시 기다려본다. “얘들아 수업해야지?” 여전히 대답없이 나를 쳐다본다. 또 잠시 기다려본다. “고3 2학기도 수업 하기는 하는 거지? 내가 고3수업을 안해봐서” 여전히 대답이 없다. “오늘 뭐 할 거 있어? 바쁘니?” 그제서야 1분단 맨 뒷자리에 친구들 서넛과 모여앉아있던 반장아이가 조그맣게 말한다. “오늘도 수업하실 거예요?” 아... 오늘 수업할 준비가 안 되었구나... “오늘 쉬고 싶어?” “네~~” 여러 아이들이 입을 모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오늘은 쉬자. 내일부터 하자.” 아이들도 웃고 나도 웃는다.

그리고 다음날 교실에 들어가서 내가 교과서를 펴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각자 자리에 앉고 교과서를 편다. 우리는 다른 말이 필요없이 어제도 오늘도 마음이 편안했다.


#2. 2학년 때부터 2년째 가르치고 있는 한 아이가 있다. 유도를 하는 그 아이는 내신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수업을 방해하지는 않지만 전혀 참여하지도 않는다. 늘 자고 있거나 주변 친구들과 작게 이야기를 하거나 혼자 멍하니 앉아있거나 한다. 아이들이 활동지를 작성하고 있을 때 교실을 돌다가 그 아이 책상을 들여다보면 늘 백지여서 작은 목소리로 “여기 써야지.”라고 하며 아이는 씩 웃고 한 마디를 적는다. 때로는 고개를 천천히 젓는다. 때로는 “선생님 죄송해요”라고 하면서 활동지를 깨끗하게 펴서 나에게 돌려준다. 나도 같이 웃고 때로는 한번 더 권해보고 때로는 활동지를 받아오고 때로는 아이의 어깨를 살짝 밀며 “아 진짜 너 그러냐”하고 돌아온다. 수행평가를 보고 종이를 걷어보면 몇 줄 쓰다가 안되겠던지 마지막줄에 “선생님 죄송합니다” 라고 씌여있다. 나는 혼자 웃는다.


#3. 담임을 맡은 반 아이가 여러 아이들과 무리지어서 한 아이를 괴롭힌 일이 있었다. 그 아이는 주동자는 아니었지만 미운 말도 여러번 하고 나를 속상하게 하기도 했다.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어느 날 수업시간 모둠활동을 했다. 활동이 끝난 사람은 활동지를 제출하라고 했다. 아이는 다 끝냈는지 내려고 일어섰다가 잠깐 서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마르고 큰 키의 아이가 껑충하게 서 있는게 눈에 띄어서 살펴보니 같은 모둠의 아이가 다 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활동지를 아직 쓰고 있던 아이는 몇 년에 걸쳐서 외톨이로 지내오면서 스스로 날카로워져 우리 반 아이들과도 관계가 좋지 못했던 아이였다. 껑충한 키의 아이와도 사이가 나빴다. 기다려줄만한 사이가 아니었던 게 자신도 멋쩍었던지 기다리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게 어정쩡한 자세로 잠깐 서서 조금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은 모둠 활동지를 다 모아서 냈다. 나는 혼자서 비식 웃었다. 열여덟의 까칠한 아이들이 이렇게 말랑할 때가 있는 걸 사람들도 알까 싶어서.


#4. 일 년 내내 교실에 가만히 앉아 멍때리고 앉아있는 아이들 중 한 명인 A는 학교 규칙을 자주 어겨서 학생부에도 들락날락하고 어느 날은 경찰서에도 다녀왔다고 조심히 전해주기도 했었다. 말수가 적고 행동이 느릿느릿하지만 항상 비협조적인 A 덕분에 나는 교무실에서 한숨을 쉴 일이 많았다. 진로상담을 할 때마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할 수 없다며 아무말도 않던 A가 어느 날 상담시간에 말을 할 듯 말 듯 주저한 날이 있었다. 나는 마음이 기뻐 ‘뭔데? 말해봐?’ 물었고 아이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겨우 한 마디 뱉었다. 아이가 반년만에 내게 꺼내놓은 마음은 ‘강아지’ 였다. ‘강아지?’ A는 또 한참 뜸을 들이더니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하하 웃었다.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나. A는 강아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준비중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격려도 하고 칭찬도 하다가 학교생활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응 그래서 수업을 하나도 안 듣는구나. 대학에 갈 생각이 없어서. 그래도 책은 좀 읽어도 되지 않아? 물으니 생각은 있는데 읽기가 싫다고 했다. 생각이 있다는 말에 약속이라도 하자 싶어 1달에 1권만 읽는 건 어떠냐 물으니 대답이 없었다. 왜 대답이 없냐 물으니 ‘거짓말을 못해서요’라고 한다. 이렇게 진솔할 수가. 나는 또 웃었다. 그래도 교실에 내가 갖다놓은 책들 중에 재밌는 거 많으니 시간나면 꼭 읽어보라고 하고 상담을 마쳤다. 그리고 한달쯤 지난 어느날 시험 직전 자습 시간에 A가 책을 높이 들고 읽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책 제목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내가 교실에 가져다 놓은 책이었다. 조용한 교실에서 또 나는 혼자 속으로 웃었다.


이렇게 쓰다 보니 떠오르는 얼굴들, 장면들이 너무 많다. 어떤 말도 오가지 않은 채 그 순간의 오간 것들, 혹은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기만 하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다가 누군가 살짝 알아채는 것들, 그런 모든 것들이 사실은 만남의 엑기스가 아닐까?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공식적으로 주고받는 것은 교과내용, 수업의 주제이겠지만 사실 우리가 만났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들. 그런 –한 마디로 정의해서 말할 수 없는 그런 것들- 것들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결국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싸우고 욕하고 마음이 상해서 다시는 안 보고 싶어지다가도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스치고 같이 웃으면서 사랑하게 된다. 내가 사랑했던 그 많은 순간들이 그립다.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언택트 시대에 학교가 맞닥뜨린 것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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