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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Sep 27. 2020

곁의 자리

상처를 대면하는 용기, 아픔을 지워가는 지혜


‘아끼면 똥 된다’ 가훈을 말하는 친구의 표정이 자못 심각합니다. 유희적 표현이라는 편견을 걷어내면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안으로는 때를 놓치지 말자는 반성이면서 밖으로는 이웃과 나누며 살자는 다짐이지요. 가훈으로 정했을 정도면 살면서 쌓인 게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만큼 쉽지 않았을 테고요. 그림의 제목은 <선한 사마리안>입니다. 앞서 가훈처럼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 해보면 알겠지만 단순한 일일수록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실천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고흐는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지낼 때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갇힌 공간이라 모델을 구하기 어려워 선배 화가들의 그림을 자주 모사했습니다. 고흐에게 세상에서 예수의 얼굴을 그릴 수 있는 화가는 오직 렘브란트와 들라크루아뿐이었습니다. 신앙과 그림에서 들라크루아는 고흐의 롤 모델이었죠. <선한 사마리아인>을 그린 선배 화가 역시 외젠 들라크루아입니다. 변혁으로 시작된 19세기는 개성 표현의 수단으로써 미술이 완벽하게 인정받는 시기였습니다. 차이가 이해되고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에 매끈한 완벽을 추구했던 아카데미 기준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지식인들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연구하고 기존의 틀에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면서 지배적 체제 안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합니다. 그것은 개인의 의도된 선택만은 아닐 겁니다. 시대를 지배하던 변혁 정신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이지요. 그렇게 우연과 필연이 겹친 공간은 마치 들라크루아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습니다. 들라크루아가 창조한 강렬한 색채는 낭만적 아름다움이라는 보편적 매력을 더해 관람자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습니다. 그의 그림 어딘가에는 관람객의 열정을 밖으로 끌어내는 마력이 숨어 있습니다. 낭만주의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들라크루아는 폴 세잔, 마네, 고갱, 고흐 등 후대의 많은 예술인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여기 강도를 만나 심하게 다쳐 위기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림 오른쪽 멀리 희미해지는 두 사람은 다친 사람을 모른 체하며 그냥 지나쳤지요. 평소 천시받던 사마리아인은 다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돌봐줍니다. 진정한 이웃을 생각하게 하는 선배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고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사회에 동떨어진 채 정신병원에 갇혀 미쳐가는 사람들 옆에서 지루함과 슬픔에 고흐는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더 두려운 건 재발한 발작으로 인해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할 수 있다는 현실입니다. 동생 테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자신의 그림을 외면합니다. 그림을 그릴 용기를 잃어 도움이 필요할 때, 들라크루아의 강렬한 색채는 자신을 지지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선배의 그림을 보면서 사라져 가는 열정의 불꽃을 되살리곤 했습니다. 고흐는 죽기 전까지 서로 곁을 내주고 곁이 되어주는 화가공동체를 꿈꾸었습니다. 젊었을 때 목자로서 고통받는 이들을 도왔듯이 그림을 통해서만 말해야 하는 화가들의 어려움을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기를 돕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고흐는 그림 속 고통받는 자가 되어 현실에서 도움이 필요한 자신을 대면합니다. 동시에 사마리아인이 되어 주위에 곁을 내어주고자 합니다. 고흐의 사전에는 안과 밖으로 고통을 외면하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에서 붉은 겉옷을 입은 사마리안의 허리가 곧 휠 듯 위태로운 것처럼요.




세상사를 풀어야 할 숙제로 보지 말라고 얘기를 듣습니다. 답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죠. 답을 찾는 과정에 의미를 두어야 하지만 힘겹고 고루한 여정입니다. 답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동료들끼리 모여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없는 답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의미 없는 뿌듯함으로 서로를 위로합니다. 그런데 일을 풀어가다 보면 답이 없는 문제보다 답을 알고 있는 문제가 더 어렵습니다. 열쇠를 손에 쥐었으니 문을 열고 곧 밝은 세상으로 나갈 것 같지만 뜻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남는 것은 아는 답도 실천하지 못한다는 자괴감뿐입니다. 몇 번 이런 일이 겪고 나면 풍부했던 내면의 감정은 모두 사라지고 무기력하게 시간은 흘러갑니다. 시련 앞에서 자신의 틀을 깨지 않고 버티고 견디고 외면하는 사람에게 신은 다음에는 더 큰 시련을 준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 작아진 자신을 보면서 그 이야기를 실감합니다. 고통을 인정하는 순간 아픈 나는 현실이 되죠. 애써 평온했던 일상은 마치 댐이 무너지듯 한 순간에 산산이 부서집니다. 나는 파편을 뒤집어쓴 채 부서진 세계의 한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 고통은 실존적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그 만남은 개인의 내면과 주위의 관계를 파괴되면서 시작합니다. 나는 삶의 고삐를 고통에게 넘겨준 채로 객이 되어 고통이 이끄는 대로 휘둘립니다. 폭주하는 마차에서 고통받는 이는 안절부절 어쩔 줄 모릅니다. 주위 사람들은 피하기 급급하죠. 위급한 상황을 알고 달려온 가족과 친구들은 곁을 지키며 나의 처지를 위로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지속되면 곁을 지키던 이들마저 폭주를 견디지 못하고 판박이처럼 똑같은 말을 시작합니다. 말고삐를 당겨 멈춰라. 아니 뛰어내려라. 전차 경주에 비하면 폭주도 아니다. 주변에서 이해라는 탈을 쓴 분석의 언어가 시작되면 고통을 겪는 이는 더 이상 응답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비명소리는 메마른 메아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곁을 지키던 이들마저 무너지면 이젠 긴 밤을 홀로 견뎌야 합니다. 폭주하는 마차에서 나는 외롭게 침잠합니다.


인권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사회학자 엄기호는 고통받는 이에게 고통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의미가 있더라도 고통을 겪은 이가 사후에 갖다 붙여 해석하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죠. 의미 없는 고통이지만 현실에서 고통은 우리를 경건히 침묵하게 합니다. 고통은 절대적입니다. 또한 주위와 비슷한 고통 같지만 겪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기에 개별적입니다.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 원리를 갖지요. 절대적이면서 개별적인 고통은 타자로 대치할 수 없는 실존적 아픔에 이르게 합니다. 고통 그 자체는 주위와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고통을 통해 배워야 했던 것은 고통을 뒤쫓아 붙잡고 고통의 정체를 온전히 파악하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겨워 안과 밖 구분 없이 사방으로 화살을 날리는 결코 자신일 수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앎이란 그 문제를 그런 방식으로 겪는 자기를 알고 자기를 다루는 과정이지 고통의 원인을 알고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엄기호,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아무리 말해도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직시할 때, 즉 실존적 아픔이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보편성에 닿는 순간, 외로움을 아는 사람 사이에는 곁을 내어주고 곁이 되어주는 교감과 소통이 시작되는 것을 엄기호는 현장에서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곁이 구축되면 고통을 받는 이는 함몰된 구덩이에서 나와 스스로 자기의 곁에 설 수 있었습니다. 홀로 살 수 없는 인간은 복수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안팎으로 곁이라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밖으로는 주변과 관계를 맺으며 소통하고, 안으로는 자신이 구축한 내면세계와 상호작용을 하는 공간입니다. 고통은 자신의 내면을 파괴하는 동시에 주변을 붕괴시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은 동행을 모릅니다. 하지만 고통은 나눌 수 없다는 실존적 아픔을 느낄 때 비로소 곁과 함께 나누는 동행이 가능해지는 운명의 장난을 경험합니다. 내면의 안받침이 없으면 바깥으로 관계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바깥에서 곁의 받침이 있어야 내면의 세계를 다시 구축할 수 있습니다. 고통의 시대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곁의 자리’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곁의 자리에서 서로의 삶 속으로 스며들며 삶이 빛나는 경험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다시 관심과 연대가 희미해진 이 곳에서 나는 곁의 자리가 어디쯤 일지 궁금합니다. 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은 소녀상이 아니라 곁에 있는 의자라고 했습니다. ‘서정적으로 올바른 시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안다’고 했던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윤동주의 시 <병원>에 나오는 ‘그가 누웠던 자리’를 지목합니다.


"서정은 언제 아름다움에 도달하는가. 인식론적으로 혹은 윤리학적으로 겸허할 때다. 타자를 안다고 말하지 않고, 타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자신하지 않고, 타자와의 만남을 섣불리 도모하지 않는 시가 그렇지 않은 시보다 아름다움에 도달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서정시는 가장 왜소할 때 가장 거대하고, 가장 무력할 때 가장 위대하다. 우리는 그럴 때 ‘서정적으로 올바른’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서정적으로 올바른 시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안다. 그것은 ‘그가 누웠던 자리’다."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절대성과 개별성을 지닌 타자와 근원적으로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낮은 자세로 끊임없이 타자의 곁으로 가는 것이죠. 곁의 자리는 고통을 직접 맞서는 자리가 아니라 곁을 통해 고통과 우회적으로 동행하는 자리입니다. 곁의 자리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말년의 역작 <공간의 탄생>에서 공간과 사회 사이의 내재적 연관성을 강조했습니다. 곁의 자리는 그가 누웠던 물리적 공간이자 인간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공간입니다. 아픈 여자가 누었던 자리에 내가 누워보는 공간의 실천을 통해 새롭게 체험되는 공간 재현입니다. 고통스러워 외롭고, 내가 누구인지 몰라 외롭고, 곁을 주지 못해 외로웠던 나에게 바깥으로부터 시작된 곁은 스스로 자기의 곁에 설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궁극에는 고통을 유발한 실존적 문제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아픔을 지워가는 지혜가 만들어지는 자리입니다.


고통은 매번 폭주하는 마차에서 내리려는 나를 붙잡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제시한 다섯 단계를 내밀면서 자기 세계와 현실 사이의 모순을 낱낱이 들여다보았는지 물어봅니다. 너무 빨리 용서하고 모든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았느냐? 남의 탓으로 돌려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건 아니냐? 나는 풀이 과정과 체크 리스트까지 손에 들고서 고통의 무쇠 방 문고리를 잡고 망설입니다. 문고리를 놓고서 내가 서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오늘은 아는 답도 실천하지 못한다는 비난보다 눈물과 위안의 악수를 내게 청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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