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퇴근길, 이런저런 생각이 끝나는 모퉁이에 높다란 담벼락이 있다. 담벼락이 시작되는 곳에 초등학교를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담벼락의 높이를 감안하면 학교는 길보다 상당히 높은 언덕 위에 있나 보다. 퇴근이 늦다 보니 늘 어두운 벽면을 오른쪽 곁에 두고 왼쪽의 주택가 불빛을 바라보며 걸었다. 어느새 담벼락은 뒤에 있기 일쑤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우연히 담벼락에 무언가가 그려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초가집도 있고 구름도 있고 사람도 있다. 뭔가가 있구나 궁금증을 확인하고자 마음을 먹지만 이생각 저생각 걷다 보면 어느새 담벼락은 뒤에 가 있다. 근무시간에 불쑥 어떤 그림일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하루의 피곤함에 겨워하며 내내 궁금증을 풀지 못하다가 한 번은 담벼락의 그림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길게 펼쳐진 그림의 바탕은 황금 들판을 연상시킨다. 그 시작과 끝은 부드러운 산들의 원근감에 여유로움을 더하는 흰구름까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풍경이다. 사이좋게 벼 베는 농부가 보인다. 광에 쌓인 쌀가마도 보인다. 쌀가마를 바라보며 갸우뚱거리는 농부를 보며 어릴 적에 읽었던 우애 좋은 형제 이야기임을 직감했다.
형은 광에서 쌀가마를 꺼내어 동생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동생은 형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광에 있는 쌀가마는 어제와 다를 바 없다. 어리둥절해하는 형제가 다시 저녁에 쌀가마를 지고 서로의 집으로 향하다 만나서 형제애를 확인하는 그림. 눈가에 그려진 엄청난 크기의 눈물이 결코 그림에서나 가능한 표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벽화의 아우는 내 아우가 되었다. 담벼락의 그림을 확인한 후로는 퇴근길에 그림 하나하나를 새기며 걸었다. 아우의 오늘은 어떠했을지 궁금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