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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Ko Sep 06. 2016

리스본 에그타르트 맛집, ​​파스테이스 데 벨렘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그 스물네 번째 이야기

호카 곶을 끝으로 알차고 길었던 신트라 근교여행이 모두 끝이 났다. 이제 유럽을 떠나 아프리카로 넘어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쯤이면, 숙소로 일찍 돌아가 그간의 포르투갈 여행을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될 모로코 여행을 준비해야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 리스본을 하나도 구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로코로 떠나는 비행기 시각이 오후 3시 정도였기 때문에, 다음날 오전, 리스본 시내를 대충 둘러볼 시간은 있었지만, 포르투갈 여행이 이렇게 끝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래서 신트라에서 돌아오자마자 숙소에 짐을 던져두고 밖으로 나와 트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대항해시대의 영광을 간직한 벨렘지구! 호시우 광장 근처에 위치한 숙소에서 트램으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비록 '칙칙폭폭' 소리가 나지는 않지만, 마치 기차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것 같은 트램에 올라탔다. 삐그덕 거리는 창문과 나무판에 못자국이 선명한 내부 모습이 묘하게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오래 된 트램이지만, 낡았다기보다는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관광객의 입장'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벨렘지구에 도착하자마자 건축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냉큼 사진을 찍긴 했는데,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겠다. 이미 해가 진 지는 오래였고, 혹시나 해서 와 봤지만, 역시나 이 시간에 관광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수였다. 

사실 이 날, 벨렘지구를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트라에서 허겁지겁 뛰어다니느라 건너뛰었던 저녁을 해결해야 한다. 길 건너편으로 케밥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하여 Pao Pao Queijo Queijo, 대충 파오퀴조라고 해두자. 

가게 안으로 걸음을 옮기니, 직원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주방 뒷편으로 정신없이 쌓여있는 집기가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벽에 걸린 주전자 위에 적힌 'Self-Service'라는 문구를 보면서, 내가 리스본의 케밥집에 온건지, 전주 비빔밥집에 온건지 잠시 헷갈렸다. 

하도 오래 전이라 당시에 뭘 주문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충 '비프'라는 단어를 보고 메뉴를 골랐던 것 같다. 새빨간 트레이에 얇은 종이, 프렌치 프라이까지... 동네 맥도날드가 생각나는 비주얼이다. 캐첩 대신 나온 소스는 머스타드에 마요네즈를 섞은 듯한 맛이었는데, 제법 괜찮았다. 뭐, 그렇지만 맛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그냥저냥 한 끼 때웠다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대충 배를 채운 후, 향한 곳은 케밥집 바로 옆에 위치한 Pasteis de Belem, 파스테이스 데 벨렘이라는 에그타르트 가게다. 에그타르트의 원조, 리스본에서도 가장 오래된 에그타르트 전문점이다. 리스본에 왔다면 다른 건 몰라도 이 에그타르트만큼은 반드시 먹고 가야한다. 그래서 나도 이 늦은 시각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굳이 머나먼 벨렘지구까지 건너온 것이다. 

블로그를 보면, 수 많은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곳으로 소개되곤 하지만, 워낙 늦은 시각에 찾아서인지 내가 갔을 때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나?' 하는 불안감이 밀려올 정도였다. 미리 찾아놓았던 사진과 가게 외관을 몇번씩이나 비교해가며 확인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Tip> Pasteis de Belem은 사람이 많아 오래 줄을 서야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스케쥴을 조정할 수 있다면, 이른 아침이나 저녁 늦게 이 곳을 방문하도록 하자. 줄을 서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세계 최고의 에그타르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영업시간은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다. 

리스본 최고의 맛집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한산한 내부 모습이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명소'라는 곳에서는 북적이는 사람들을 피해 적당한 앵글을 잡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에그타르트의 역사가 시작된 이 곳에서 이렇게 마음껏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니... 돌이켜 보면 크나큰 행운이 아니었다 싶다. 

매장 안 쪽, 저 조그만 통로를 지나면 꽤 넓찍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밖에서 슬쩍 보는 것보다 좌석이 많으니, 기왕이면 안쪽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후 주문을 하자. 테이크 아웃은 줄이 엄청나게 늘어서는 반면, 매장 안에서는 자리를 잡으면 바로 웨이터를 통해 주문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빨리 에그타르트를 맛 볼 수 있다. 물론, 자리를 잡았다는 전제하에서... 

이미 케밥을 하나 뚝딱 해치우고 온 뒤였기에, 일단 간단하게 에스프레소 한 잔과 에그타르트 하나를 주문했다. 노릇노릇 잘 익은 에그타르트는 하나에 1.05유로, 에스프레소는 한 잔에 0.75유로, 둘이 합쳐 채 2유로(3,000원)가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이다. 동네에서 파는 계란빵이랑 별 차이가 없는 가격에 한 번 놀랐다. 

사실 그 전에는 '에그타르트'라는 것을 먹을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날 아침, 신트라로 가는 길에 먹었던 에그타르트가 아마 내 인생의 첫 번째 에그타르트가 아니었나 싶다. 그 때만해도 달콤고소한 에그타르트의 맛에 놀랐었는데, 이 곳의 에그타르트의 맛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에그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꽃보다 할배에서 신구 할아버지가 왜 그토록 이 곳을 극찬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바삭한 페스츄리 안 쪽으로 가득찬 부드러운 속살이 느껴지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토록 맛있는 음식을 그냥 맛만 보고 지나칠 수는 없었기에, 그 길로 냉큼 카운터로 달려가 에그타르트를 몇 개 더 주문했다. 마치 선악과를 맛 본 아담처럼 이성을 잃고 허겁지겁 에그타르트를 먹어치운 후에야,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날 이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여기저기서 에그타르트를 사 먹어 봤지만, 그 어디서도 '원조'의 맛을 느낄 수는 없었다. 같은 음식이라고 해서 다 같은 맛은 내는 것은 아닌가 보다. 

늦은 시각, 피곤한 몸을 이끌로 벨렘지구로 향할 때만 해도, '그깟 에그타르트가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돌아가는 길에는 '역시, 잘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한 잔과 디저트 몇 조각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 곳, 여기는 리스본이다. 그리고 나는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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