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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Jan 31. 2021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기억


남편은 대대로 장수 집안이다.

나에겐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가 계셨다.

두 분은 올해 연세가 각각 96세, 94세신데, 아흔이 넘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정정하시다. 아직도 약간의 농사를 지으실 정도다.


할아버지 댁은 모든 게 좋았다.

흙의 비릿하고 단단한 그 냄새, 채소들이 햇볕에 반짝이며 자라는 그 모습, 손주며느리가 왔다고 장작불에 구워주시던, 고구마가 익어가는 그 냄새.

은빛 머리카락을 반짝이며 밭을 둘러보시는 할아버지의 어깨는 빳빳한 다림질로 각이 잡혀 한껏 단단해 보였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참 많이도 좋아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손주며느리였음에도, 그저 예쁘다고 웃어주시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의 집에는 보물창고가 하나 있다. 안방에 딸린 작은 방인데, 거기에는 맛있는 과일들과 과자들이 잔뜩 쌓여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선물이 들어오면 좀처럼 드시거나 쓰시질 않으셨다.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나눠주지도 않으셨다.

시어머니는 본인이 며느리임에도 그 창고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가끔 서운했다고 말씀하셨었다. 그런데 나는 그 보물창고를 수시로 들락 거렸다. 뭐든 다 먹어도 좋다는 허락도 받았다. 철없는 나는 보물창고를 구경하면 시어머니께 자랑도 했다. 해맑은 손주며느리라 그냥 다 예뻐 보이셨나 보다. 무뚝뚝해서 말도 잘 안 하시는 할아버지지만 그 마음만큼은 절대로 무뚝뚝하지 않으셨다. 보물창고를 구경하고 있으면 시크하게 들어오셔서는 “저거 맛있어. 하나 먹어봐” 하곤 쏜살같이 나가시곤 했다. 난 그런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좋았다.






장례식장에 가니 이미 많은 어른들이 와 계셨다.

영정 속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믿기지가 않았다. 저렇게 정정하신데... 작년 가을 코로나 핑계로 명절에 집에 있었던 것이 후회됐다. 마지막으로 뵐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허무하고 죄송했다.


나는 장례식에는 거의 참석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장례식은 여러 번 있었지만 부모님께서는 좀처럼 데리고 다니지 않으셨다. 어린 나이에 장례식이라는 환경을 접하는 것이 내키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장례식이라는 것도, 더 나아가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솔직히 지금도 시골에 가면 할아버지가 그냥 그 자리에 계실 것 같고, 아무 일 없단 듯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갈 것 같다.


나는 아버님의 팔짱을 끼고, 조심스럽게 괜찮으시냐고 여쭤봤다.


“ 안 괜찮지. 내 아버진데.. 그래도 또 괜찮다. 내 기억 속에는 늘 계시니까.”


기억.

사람이 가진 놀라운 능력 중 하나.

그 능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주어진 평생을 현실에 살고, 남은 이들을 위해 기억 속에서 또 다른 삶을 산다.

그것이 우리의 가치이자 의미이지 않을까.

의미 없는 사람은 없다. 가치 없는 사람은 없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색깔이 있다. 모두 그런 삶을 산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모두의 가슴속에 어떤 형태로든 있을, 점점 두꺼워질 기억 속 메모들과 사진첩들.

그것들이 나를 더 이상 슬프지 않게, 부디 오래오래 그 기억들로 힘을 내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하루하루를 예쁘게,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감사하게도 나를 기억해 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예쁘게 남아주고 싶어서.

누군가는 그 예쁜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기에.


할아버지의 그 모든 모습과 내게 주신 그 사랑을 아직은 얇은 내 마음 속 그 것에 지그시 담아본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가득한 그 흙 냄새가 아직 너무 벅차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어디에도 안 계시지만 어디에나 계신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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