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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빛 Sep 06. 2021

어디로든 문

아홉 살 딸은 맥도날드 해피밀을 좋아한다. 크기도 아이가 먹기에 적당하고, 무엇보다 한 달에 한번 바뀌는 장난감을 좋아한다.

우리는 주로 주말에 농장에 가서 밭일을 한 후 먹는데, 그 이유는 밭 근처에 맥도날드가 있기 때문이다.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일을 한 후 마시는 시원한 콜라와 짭짤한 감자튀김을 먹고 있으면 천년의 분노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주말농장의 가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배추와 무를 심기로 했다. 밭을 열심히 고르고 배추 모종을 심었다. 문득 머릿속에 김장철 배추 만수르가 된 내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밭일을 끝낸 우리는 고픈 배를 부여잡고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이번 달 해피밀 장난감은 “도라에몽” 시리즈다. 장난감이 어떤 큰 기능은 없어도 일단 캐릭터가 귀여우니까, 아이는 뭘 고를지 한참 고민하다가 3개를 골랐다. (이 장난감 때문에 우리 부부도 해피밀을 강제로 먹는다. 나는 다른 거 먹고 싶은데……)


아이가 고른 장난감 중 하나,

“어디로든 문”이란다.



기능은 굉장히 단순하다. 그냥 문을 열고 닫는 게 끝. 이 문을 열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단다. 기능은 단순한데 의미는 낭만적이다.


“엄마 나는 이 문을 열고 방학 전으로 갈 거야. 할머니 집에 또 가고 싶고 캠핑도 또 가고 싶어.

그리고 코로나 이후로 가고 싶어. 코로나가 끝나면 마스크도 안 쓰고 학교에서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하고 싶어. 친구들 얼굴도 똑바로 보고.

근데 엄마는 이 문을 열고 어디로 가고 싶어?”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 순간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가 있던 그 시간, 그곳으로 가고 싶어.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단짝이었다. 고1 때 우연히 짝이 된 이후로 우리는 늘 붙어 다녔다. 늘 용돈이 부족했던 나를 대신해 꽤 부유한 편이었던 그녀는 늘 매점에서 내 것까지 챙겨주었다. 나는 늘 그녀에게 미안했고 고마웠다.


부모님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과, 성적 고민 등을 나누면서 우리는 더더욱 가까워졌고 학원까지 같이 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다른 반 친구들이 나에게 그녀의 안부를 물어볼 만큼.


대학을 서로 다른 곳을 가게 되면서 우리는 만나는 횟수도, 연락하는 빈도도 점점 뜸해졌다. 생존신고 정도였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보고 싶으니 만나자는 문자를 자주 보냈으나 나는 남자 친구 때문에, 시험 때문에, 여행 때문에, 취업준비 때문이라는 변명하에 거절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다행히 원하는 곳에 취업이 되었고, 그녀는 아쉽게 취업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그녀는 자격증 공부를 더 하면서 취업준비에 바빴다.


그때쯤이었나 보다. 부유하던 그녀의 집이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업실패를 맞아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게. 그녀가 처음 사귄, 목숨만큼 사랑하던 남자 친구와도 헤어진 게.

번번이 취업 실패의 쓴 맛을 본 게.


그때쯤이었나 보다.

그녀의 상처를 다 알고 있으면서, 보듬어주지는 못할망정 회사에서 보너스를 받았다, 남자 친구가 선물을 해줬다, 일하느라 너무 힘들지만 재미있다며 그녀의 마음에 소금을 뿌린 게.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던 그녀의 모습이 내가 본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녀의 편이었지만, 또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몇 달 뒤, 나는 그녀의 장례식장에  앉아있었다. 그녀에게 무심하고 못되게 군 지난날의 내 모습을 죽이고 싶을 만큼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친구들은 절친이니 얼마나 더 힘들겠냐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지만, 그들은 몰랐다.

내가 절친이라는 이름하에 얼마나 그녀에게 잔인하게 굴었는지, 남보다 못했는지.




그녀가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혼자가 아니었지만 홀로 남겨졌다고 생각했을 그날, 그 밤.

나는 “어디로든 문”을 열고 그때로 가고 싶다.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다 지나간다고, 괜찮다고 안아주고 싶다.

어릴 적 그때처럼 늘 곁에 있으면서 힘이 되어주겠노라 약속하고 싶다.


왜 사는 건 늘 후회의 연속들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나는 온전한 내 마음을 보여주고 나눌 수 있는 내 편을 스스로 잃었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그런 친구는 내겐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생을 후회하고 그리워하고 미안해하면서 살겠지.

물론 그녀가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전부 다 내 탓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힘이 들 때 그녀가 기댈 곳이 없었다는 것, 내가 그 그늘이 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이의 “어디로든 문” 장난감을 안방 화장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슬쩍 놔뒀다. 언제든지 그 문을 열고 그녀를 기억할 수 있게. 평생 미안해하며 사과할 수 있게.


그녀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고 감히 말하기도 미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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