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드라마를 잘 안 보는 내가 몇 년 전에 아주 재미있게 봤던 작품이 있었다.
도깨비.
죽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죽음 이후의 과정이 뭉클하면서도 마음에 두고두고 남았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럽든, 예견되어 있었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저승사자가 안내를 하고, 저승사자가 직접 내려주는 망각의 차를 마시고 삶의 기억을 모두 지운 후, 아주아주 맑은 하늘 속 천국의 하얀 계단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뇌리에 깊게 남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도깨비” 속 그곳처럼 그녀가 맑은 하늘 속 천국의 하얀 그 계단을 찬란하게 걸어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그녀를 딱 두 번 봤다. 그녀는 남편의 대학시절 친구의 아내였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그 친구도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에서 처음 봤고, 돌잔치 때 두 번째로 봤다.
그녀는 활발한 남편의 친구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말 수가 없는 성격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푸른 핏줄이 비칠 만큼 하얗고, 입술은 붉어서 참 청순하고 예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낯을 가리는 성격이고, 그녀 역시 그랬으니 우리는 서로 대화를 거의 나눈 적이 없었다. 그저 어색한 눈인사만 나눌 뿐이었다.
돌잔치에서 그녀는 남편과 테이블을 일일이 돌면서 감사의 인사를 건넸는데 그녀의 표정에서는 행복하면서도 쓸쓸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마 그녀의 속눈썹이 유난히 길어서 더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나는 긴 속눈썹이 참 예쁘다고 생각되면서도, 슬퍼 보이는 그 무언가가 살짝 신경이 쓰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침에 걸려온 남편의 전화.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아이가 하교하기 전에 서둘러 조문을 다녀오자고 했다.
대체 무슨 소린지. 그녀 나이 이제 서른여섯 살이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남편과 서둘러 조문을 다녀왔다.
남편의 친구, 그러니까 그녀의 남편도 넋이 나가 있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조차 몰라 나는 그냥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는 더 이상 울지도 않았다. 아니, 실감이 안 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결혼 초 우연히 받은 건강검진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했다고 한다. 젊은 나이 때문에 회복도 빨랐다. 그 후 아이도 둘이나 낳고 평범하게 살았다. 그런데 최근 재발한 것을 너무 늦게 알았고, 손을 쓸 새도 없이 병세가 악화되어 그만 세상과 작별을 하게 된 것이었다.
장례식장에는 그녀의 어린 두 아이가 너무나도 즐겁게 떠들며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나도 해맑아서, 그 웃음소리가 너무 예뻐서 나는 서러웠다. 아이들은 놀다가도 계속 엄마가 어디 갔냐고 물었다. 아빠는 엄마는 갑자기 하느님이 급하게 부르셔서 하늘나라에 갔다고 했다. 아이들은 하늘나라 가서 언제 오냐고 또 물었다. 아빠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영정사진을 가만히 앉아 보고 있으려니 그녀는 남은 아이들 걱정에 눈이나 제대로 감았을지 걱정이 되었다. 아마도 나 역시 엄마라는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이리라.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보다도 남겨질 아이들이, 남편이 더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두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누구보다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대학을 입학하고, 결혼을 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 것 같아서 나는 너무 서럽고 슬펐다. 억울했다.
하느님,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면서 크게 풍선껌을 씹어서 그녀의 등 뒤에 커다랗게 붙여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렇게 삶에서 그녀가 어떻게든 딱 붙어있게, 가족들과 조금 더 함께할 시간을 허락하시지 그러셨어요.
신을 믿지 않지만 그때만은, 나는 조용히 하느님을 원망했다.
장례식장에서 늘 느끼는 거지만, 사연이 없는 죽음은 없고 가치가 없는 삶은 없다. 모든 삶은 다 이유가 있고 그래서 찬란하게 빛난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으면 모두 슬퍼하고 오래오래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을 살게 하는 게 아닐까.
그녀가 모든 걱정을 다 잊고 “도깨비” 속 찬란했던 하늘계단을 오르기를.
훌훌 털고 마침내 자유로워지기를.
거기선 아프지 않기를.
그녀의 명복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