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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판양 Oct 04. 2024

멈추면 비로소 후회하는 것들

핸드폰 사망선고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사람을 ‘포노 사피엔스’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인간의 몸이 ‘오장육부’가 아니라 ‘오장칠부’라고 이야기합니다. 

간 밑에, 쓸개 밑에, 스마트폰이라고 말이죠.

이제 스마트폰은 필수적인 인공장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표현 같습니다.

  도구와 장기의 차이점은 명확합니다.
도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잠시 꺼내어 사용하지만
장기는 항상 신체에 붙어 있고 무의식 속에서 뇌와 연결되어 작동합니다
 <AI 사피엔스 >, 최재붕  - 밀리의 서재 중 -


이젠 스마트폰과 한 몸이 되어,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핸드폰이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고객사의 요청을 놓칠까 봐,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서, 사람들과의 소통도 카톡으로 하니까.

늘 가까이 두고 있으니, 핸드폰은 내 일상의 중심이었다.


그러던 핸드폰이 추석 연휴 동안 몇 차례 경고 신호를 보냈다.
“주파수 검색 중입니다. 긴급 신호만 가능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며 전화가 먹통이 됐다.
다행히 인터넷과 카톡은 되길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연휴가 끝나면 센터에 가야지,라고 가볍게 넘겼다.

목요일에 서비스센터에 가니, 나처럼 연휴 동안 핸드폰이 고장 난 사람들이 가득했다.
대기 번호는 95번. 최소 3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냥 돌아왔는데, 이틀 후 토요일 아침, 핸드폰은 완전히 사망했다.



블랙아웃 상태에 빠지고, 충전도 되지 않으며, 결국 화면이 완전히 꺼졌다
어떻게든 살려보려 했지만, 무한 재부팅만 반복됐다.

비 내리는 토요일 아침 서둘러 서비스센터로 향했다. 

이미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한눈에 봐도 20명이 넘어 보였다.


번호표를 뽑고 15분 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가 되었다.


" 증상이 뭐예요"

마치 병원 가면 의사가 환자한테 어디가 아파서 왔냐고 묻는 듯 엔지니어가 말했다.

“아침에 갑자기 블랙아웃 됐어요.”라고 답하니, 

“불편하셨겠네요. 메인보드가 나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해해서 확인해 볼게요. 15분 정도 걸립니다.”


기다리는 15분이 길게 느껴졌다. 

진단 결과는 메인보드 고장.

데이터는 모두 손실되고, 수리비는 53만 원.
하나둘 쌓아둔 기억들과 내 일들이 허망하게 날아가버리는 순간이었다.


추석 마지막 날 엄마랑 갔던 카페에서 찍은 사진들이 생각났다.

그날의 웃음과 따뜻한 순간들 마저 고스란히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중요한 문서들은 백업해 두었지만, 잃어버린 순간들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게 가슴 아팠다.


주말이라 핸드폰을 새로 사도 개통은 되지 않았다. 

평정심을 찾기 위해 글을 쓰고 TV를 보며 이틀을 보냈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급하지 않았다. 

연락은 PC 카톡으로 간간이 하면서도, 

텅 빈 손에서 느껴지는 묘한 여유가 오히려 낯설지 않았다.

텅 빈 손은 어색했지만, 그 빈자리가 주는 묘한 평화로움이 있었다. 

연휴 동안 무심코 흘려보낸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핸드폰에 얼마나 의지하며 살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월요일 출근 후 중요 고객사한테 핸드폰 고장으로 급한 연락은 카톡이나 메일로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오후에 핸드폰 복구업체를 갔다.

 그동안 핸드폰이 몇 번 경고를 보냈을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복구 업체에 가니 사장님이 말했다. 

“몇 번 시그널을 보냈을 텐데요? 대부분 경고 신호를 무시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 맞아요. 그동안 몇 번 저장용량을 비우라는 메시지를 줬어요 "

" 용량관리가 중요합니다. 이미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는 걸 경고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계속 쓰다 보니 메인보드가 나갔어요 "

아~~~~ 그래도 아직 풀로 차지 않아서...

내 핸드폰을 분해하고 속을 보더니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너무 아픈 아이라고 했다.

살뜰하게 보살펴 주지 못한 나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여러 중요한 자료가 있으니 복구해 달라고 했고 다행히 복구는 될꺼같다고 하셨다.

핸드폰이 없는 동안, 나는 얼마나 중요한 순간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지 새삼 느꼈다.


늘 옆에 있는 게 당연했던 작은 화면 속에서, 우리는 순간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었다.

앞으로는 핸드폰뿐 아니라, 

내 일상 속에서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더 살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불편을 넘기지 않고, 작은 경고들을 귀 기울여 듣는 것

그것이 일상을 지키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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