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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를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아 귀여워!

by 파도 작가

어항에 불청객이 생겼다. 그놈은 바로 물달팽이. 정확한 이름은 왼돌이물달팽이(Physella acuta, 껍질 방향이 왼쪽으로 되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생김새는 안드로메다에서 급파된 불멸의 '외계 생명체'처럼 생겼다.


그놈은 오염이 심한 하천이나 강에서도 강인하게 서식하며 알을 폭번 한다고 했다. 어느 날 나는 딱 하루, 치어통에 한 마리를 잡아서 넣어 두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설탕시럽처럼 생긴 희끄무레한 알들을 벽에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정말 어마무시한 놈이 맞았다.


아 정말로 큰일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수초 어항이 달팽이 어항으로 전락하게 될 엄청난 위기에 처한 것이다. 처음에는 뭐가 문제냐며 '달팽이 퇴치 약'을 치면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바보, 약을 치면 달팽이는 물론 물고기들도 함께 용궁으로 간다는 걸 몰랐다.


그럼 다른 방법은? 그래, 있긴 하다. 어항을 100 프로 다시 세팅(리셋) 하는 것이다. 말이 쉽지 이것은 대공사다. 어항물을 모두 빼고, 모든 수초를 다시 심고 유목과 돌에 붙어 있는 달팽이 알들을 모조리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벌써 허리가 끊어질 것만 같다. 꼬박 주말을 헌납해야 하는 작업량이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리셋했다고 치더라도 달팽이는 불사신처럼 부활한다고 하니 이 방법도 아니었다.


그럼 이제 마지막 방법이 남았다. 바로 생물병기, 달팽이의 천적, 킬러를 고용하는 것이다. 바로 인디언 복어다.


오잉? 만화 속 주인공처럼 생긴 이 친구가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라고?



인디언 복어의 학명은 Carinotetraodon travancoricus, 애칭은 dwarf puffer. 사전적 의미는 dwarf는 난쟁이, puffer는 복어, 즉 '작은 복어'라는 뜻이다. 물생활인 들은 '인복이'라고 부른다.


음, 그래 인복이라. 나는 초긍정 마인드와 풍수사상을 접목해 '들어올 인(In), 행운의 복(福)', 복이 들어오는 물고기라고 명명했다.

초귀여운 킬러

화창한 일요일 어느 날 드디어 인복이 두 마리를 어항에 투입했다. 너무도 귀여운 인복이가 어떻게 딱딱한 껍질의 물달팽이를 사냥할까?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매일 관찰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4자 어항 미크로소리움 수초 앞 붉은 화산석 틈에 물달팽이가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만자니타 유목사이로 초롱초롱한 눈망울 두 개가 보였다. 조용한 킬러, 인복이였다.


앗, 갑자기 동그랗고 귀여운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몸을 최대한 움츠렸고 천천히 꼬리를 왼쪽으로 90도로 구부렸다. 아니, 이 자세는 공격 직전에 취하는 자세!


인복이는 머리를 살짝 오른쪽 왼쪽으로 기울였다. 요리조리 살피며 가장 약한 부위를 찾고 있는 것이다. 아, 매우 신중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1차 공격, 날렵하게 달팽이 머리를 입으로 물어뜯었다. 달팽이는 날렵하고 정확한 공격에 힘을 잃고 돌에서 떨어졌다. 달팽이와 인복이는 함께 어항 밑으로 빙글빙글 돌며 낙하했다.


"달팽이와 함께 춤을 ㅋㅋㅋ"


다시 2차 공격. 오~ 날렵하다. 어떻게 이런 스피드가 나오는가! 평소에는 느림보였는데 반전에 반전이었다.


이렇게 폭번한 물달팽이 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킬러 고용은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항 속에서 가장 귀엽고 가장 약하고 겁이 많은 하스타투스 아이들은 과연 안전이 보장될까? 아아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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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타투스 아이들 집에 누가 불법침입을 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어요. 비상비상! 아래는 그 이야기입니다.
https://brunch.co.kr/@papafish/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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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어떻게 달팽이를 사냥하는지 동영상을 만들었답니다. 아 ~ 오래 걸렸습니다. 힘들었습니다.
https://youtu.be/EfAIcz20kFo?si=I5MKvSCVqIRwq70j
많은 감상 부탁드리며 영상이 맘에 드셨다면 구독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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