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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즈플 Oct 03. 2023

병에 걸린 이유를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요?

늑대물린여자 25



인간은 언제나 알고 싶어 한다. 상황에 대한 원인을 찾고자 한다. 자신의 일 뿐만 아니라 남의 일이어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알고 싶은 욕구에 배려가 들어가지 않으면 거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건강했잖아? 어쩌다 그렇게 됐어?”


병에 대해 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유를 물어왔다. 건강하다가 한순간에 병에 걸리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고. 나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할 말이 없었으니까. 


그걸 가장 알고 싶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나는 누구한테 물어야 하나. 의사? 하늘? 신?

처음 병을 진단받은 이후 그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골몰했으나 결국 답을 얻지 못한 명제였다. 병은 누군가에게, 아무 때에나 생긴다. 슬프게도 그게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차라리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이 병이 생겼다고 여기고 싶었다. 혹은 누군가가 이 병을 물려준 것을 아닐까 생각했다.

내 과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랬을까, 어떠한 사건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식습관이 잘못된 걸까, 혹은 생활습관이 문제일까.

원인을 찾으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만 종내에는 외면하던 진실을 마주해야 했다. 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물론 통계적으로 담배를 피우면 발병률이 오르고, 비만과 술도 악영향을 끼친다.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도 노화에 영향을 미쳐 노후와 삶의 질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진다. 

그러나 그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룰렛은 돌아가고, 무심히 던져지는 눈먼 화살이 어디에 꽂힐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모르는 것을 아픈 것보다도 무서워해 치과에서 안면포를 씌워주는 것도 거부하는 사람이다. 


“물 튀어요.”


치위생사의 말에도 괜찮다며 눈을 공격하는 환한 빛을 기어코 감내하고야 만다.

눈이 가려지는 순간 내가 모르는 면포 바깥에서 어떤 극악무도한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려움이 하늘높이 치솟는다. 그래서 '알고자 하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원인을 알면 좋은 점은 무엇일까? 희망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그 원인만 제거하면 좋은 결과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묻는 사람도, 병에 걸린 당사자도 기실 잘 알고 있지 않나. 병은 ‘그냥’ 걸렸다는 것을. 


'어쩌다'라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는 책망의 의미로 들릴 수도 있으며 책임의 멍에를 씌울 수도 있다. 답을 찾지 못하는 문제에 더욱 골몰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말을 건넨 당사자는 아무 생각 없었다고 말하지만, '네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지.'라는 원인의 뜻이 단어의 여백 사이에 함축되어 있다.

한글이란 참으로 심오하지 않은가? 여백의 의미를 안다면 날씨를 묻듯 가벼운 마음으로 입에 담을 질문의 무게는 아니다.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는 명백한 실례이다.


인간은 가끔 자신이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을 하고는 한다. 지구에게, 우주에게 있어 인간은 그리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돼지도, 코끼리도, 사자도, 바퀴벌레도, 인간도 다 같은 구성물질로 이루어졌다. 죽으면 땅으로 돌아갈 물질이다.

병에 걸린 사실을 매우 대단한 비극으로 여겨 왜 내게 이런 비극을 내렸는지 이유를 찾고 원망하기 시작하면 무정한 지구는 “네가 운이 없어서.”라고 할 거라.


사람에게는 다양한 비극이 닥쳐온다. 내게 루푸스가 닥쳐왔듯 개개인에게 다양한 모습을 한 비극이 때때로 닥쳐오리라. 건강이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가족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진로나 회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때 제삼자가 “어머,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라고 물어오는 사람이 없도록 우리 김밥 말듯이 입술을 말아 물자.

설령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흐르면 어떠한가.

무례한 치덕임보다 건강한 거리감이 서로를 위해서는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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