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본질에 대하여
초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개그맨이었다. 짝꿍 동선이와 개그 콤비를 결성하겠다며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여느 학생들처럼 꿈은 현실에 밀려 바뀌고 또 바뀌었다.
결국 관심과는 무관하게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영상미디어 기술을 배웠다.
전공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더 좋았던 철부지 시절, 나는 1년을 꼬박 놀다 도망치듯 군에 입대했다.
흔히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들 하는데, 나에게는 군대가 바로 그 첫 번째 기회였다.
입대 후 장래희망 칸에 무심코 ‘개그맨’이라 적었다. 이루지도 못할 꿈을 왜 적었을까 스스로도 의문이었지만,
그 무모한 기록이 내 운명을 바꿨다. 당시 내가 속한 3보급창은 매년 부대 축제를 열었는데,
행정관님은 장래희망 칸의 ‘개그맨’ 세 글자를 보고 나를 진행자로 낙점했다.
단 한 번도 사회를 본 적 없는 이등병에게 내려진 청천벽력 같은 명령이었다.
나는 무대 공포증을 이기려 소주 한 잔을 우황청심환 삼아 들이켜고 무대에 올랐다.
그날, 이등병의 계급장을 떼고 던진 거침없는 드립들은 부대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 무대는 내 인생을 바꾸었다. 진짜 개그맨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군 생활 동안 7권의 일기장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빼곡히 채워 넣었다.
사이버지식정보방(사지방)에서 연극영화과를 검색하고, 휴가 때 모교를 자퇴했으며, 다음 휴가 때는 코미디연기학과 면접을 보았다.
내 생애 첫 ‘공적인 글쓰기’는 면접을 위해 밤새 쓴 콩트 대본이었다.
전역 후, 나는 오로지 나의 결정으로 새로운 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만난 남정미 교수님은 나의 작은 재능을 발견해 주셨고, 덕분에 4년간 개그맨 지망생이라는 가슴 벅찬 삶을 살 수 있었다.
모두가 “네가 무슨 개그맨이냐”며 코웃음 칠 때,
나를 믿어주는 한두 명의 지지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지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이러한 ‘믿음과 지지의 힘’은 영화 《킹 리차드》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빠 리차드 윌리엄스는 딸 비너스를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내지만, 프로 데뷔를 앞두고 갈등에 직면한다.
리차드는 딸이 혹여나 잘못된 길로 빠질까, 혹은 성공 후에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 결정을 미룬다.
이때 아내는 말한다. “이건 비너스의 인생이에요. 당신이 믿어주지 않으면 걘 당신을 떠날 거예요.”
리차드는 결국 딸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결심한다. 빠른 성공보다 가족의 가치와 인내를 우선시했던 그의 교육법은
결국 비너스를 흑인 여성 최초의 세계 랭킹 1위, 올림픽 금메달 4관왕이라는 전설로 만들었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또한 바로 이 ‘믿음’과 ‘지지’다.
스피치 학원을 운영하며 수많은 부모와 아이를 만날 때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부모의 ‘조바심’이었다.
아이는 충분히 잘 해내고 있음에도 부모는 옆 반 친구와 비교하며 아이의 노력을 깎아내렸다.
부모가 신뢰하지 않는 아이는 결국 자기 자신의 말조차 믿지 못하게 된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무궁무진한 존재다.
어른이 상상 못 할 창의성과 긍정의 에너지를 품은 새싹들이다.
결국 성장해야 할 것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다.
부모는 아이의 훌륭한 조력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공부하고 다듬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학부모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아이를 믿어주세요.” 아이는 부모가 믿는 대로 자라고, 지지하는 만큼 뻗어 나간다.
이 사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육아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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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파파레인저 엄두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