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로 시작하여 코로나 수혜자가 되었고, 그 혜택을 발판 삼아 옆 가게를 터서 확장하고 직원을 늘렸다고 한다.
우리 남편처럼, 지인의 남편도 장사꾼 마인드보다는 천생 요리사다. 식재료나 음식의 퀄리티를 내려놓기가 힘들고, 대충 쉽게 음식을 만들어도 장사가 잘 되는(배달어플 평점이 높은) 곳들을 볼 때마다 허탈하다고 했다.
맛을 위해 냉동보다는 생물을 사용하고, 미리 손질해 놓으면 마르고 부피가 줄어드니, 시간이 들어도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그때그때 손질해서 내놓는데, 요즘은 이게 뭔가 싶고 힘이 빠진다고 한다.
자금을 마련해서 다른 업종을 하나 더 차려야 하는지, 지금 이곳의 내실을 더 기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부부끼리 요식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서로 고충을 토로하고, 마음을 나눈 시간을 가졌다.
코로나가 잦아들 무렵, 나는 직장을 내려놓고 남편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1인 주점에서 2인이 되니 매출 상승이 금세 눈에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맞벌이를 유지하고 알바를 채용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나마 남아 있는 인류애가 상실될까 봐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았다. 퇴직금 주기 싫어서 11개월만 고용하고 내 보내는 사장이 되기는 싫고(요즘 그렇게 오래 일할 사람이 있기나 할까만은), 유급휴가, 주휴수당, 근태불량, 업무불성실, 노무 갈등... 어후, 생각도 하기 싫다.
몸 좀 덜 굴리고 편하게 벌어보자는 마음은 결단코 없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라도 뻔한 날은 없다.
나도 이것저것 만사가 다 귀찮고, 좀 더 누웠다 갈까 싶다가도, 혹시 늦게 열면 그냥 가시는 손님 계실까 봐 의지를 쥐어짜서 몸을 일으킨다. 일단 나간다. 나가면 열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가고, 내일이 허락됨을 감사하게 된다.
2016년에 오픈, 올해 11월이면 꽉 채운 8년. 이제는 그때처럼 젊지도 않다. 남편도 나도, 용하게 캐낸다는 파스를 매일 붙이지 않으면, 버틸 재간이 없다.
장사가 잘 되어 보이니, 우리 부부 주변에 사공이 점점 늘어난다.
프랜차이즈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목 좋은 곳으로 옮겨라, 한 개 더 내서 오토(가게를 직원에게 맡기고 최소한의 관리만 하는 영업 형태)로 돌리면 되지, 남편이 명품백 하나 안 사 주더냐 등 얘기가 많다.
코로나 때 대출받은 원리금 갚느라 빠듯하다, 돈 없어서 못 옮긴다고 하면 애먼 소리라며 통 믿지들 않는다.
어제도 손님에게, 혹시 배달 분점이나 레시피 전수창업 할 생각은 없냐는 제안을 받았다.
권리금 기천만 원에 넘길 생각 없냐는 부동산 업자들의 전화는 한 주에 몇 통 씩 받는 것 같다(여보야, 나 몰래 가게 내놨어?).
감사한 단골들로 어느 정도 안정도 되어 가는데, 대출이라도 땡겨 우리도 좀 갖추고 살아야 하는 아닌가? 남편이 제일 맘에 들어했던 카니발 하이리무진이라도 예약대기 해야 하나? 어느 수준으로 갖춘다는 것은, 누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일까?
혹시 우리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면, 잘해서가 아니고 10년 가까이 버티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이다.
버티면서 계속 바꿔보고 시도해 보고, 대부분 실패하고 성과가 바로 없지만, 그러면서도 그냥 버티는 것이다.
분점 차려놓고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 되기도 싫고, 고유한 맛을 지키지 못해 이미지가 깎이고 싶지도 않다.
단골과 가게의 서사가 쌓이는 시간의 질량은,절대적인 기준이다.
다들 창업하지 못해 안달 난 바이러스라도 퍼진 걸까. 장사 좀 된다 싶으면 그새 확장하고, 투자하고, 이것저것 벌이고. 요리의‘ㅇ’도 모르고 시작한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며 분점을 내고, 프랜차이즈까지 등록해서 돈을 쓸어 담는다? 이거,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거 아닌가 싶은 극단적인 의문까지 든다.
장사 잘 된다는 부러움을 받아도, 부부 사이는 부부만 아는 것처럼, 가게 사정은 아무도 모르는 거다.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은 자만심, 허영심, 경솔함이다. 좋은 기회가 있었대도 시도하지 않아서 돈을 벌지 못했다면, 그것을 아까워하기보다는 우리의 돈그릇이, 깜냥이 그 정도임을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하다.
「어쩌다 사장」이라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그중 시즌1을 정말 감동적으로 시청했다.
강원도 원천리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가맥집.
때론 사랑방, 놀이방, 택배보관함, 부동산이 되어 주는.
동네의 중심이며 심장과도 같은 곳.
수기로 버스표까지 끊어주는 특별한 그곳을, 연로한 할머님께서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홀로 운영하고 계셨다.
그 가맥집을 열흘 간 연예인들이 꾸려보는 프로그램.
차태현이 구워주는 노가리와 무려 조인성이 끓여주는(!!!) 대게라면에 막걸리를 기울이는, 동네 주민들의 따뜻하고 정겨운 교류를 보면서 남편이 얘기했더랬다.
어깨가 다하고 웍질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면, 저렇게 작고 정겨운 가맥집을 운영해보고 싶다고. 아니면 학교 앞 작은 분식집도 좋겠다고 했다.
상상해 본다.
가게 한 구석에서 짬짬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쥐포를 굽거나 피카츄 돈까스에 소스를 바르는 귀여운 할머니. 나도 그 풍경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이 작고 작은 주점이라도 나는 브랜드 가치를 지켜내고 싶다. 잘 버티고, 지혜롭게 기다리며, 나를 찾아올 기회와 반갑게 악수하고 싶다.
비록 현실은 잔인하고 몸뚱이는 스러져 간대도, 마음에 드는 풍경 하나쯤 품고 10년을, 허락된다면 또 10년을. 그렇게 꿈꾸는 자로 하루씩 터무니* 있게 살기를 희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