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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뻔펀한 홍사장 Jun 06. 2024

애(baby)가 없어도 애(愛)는 있어요<1>

사랑이 가득한 뻔뻔~

손님들에게 내 이름은 <이정ㅎ>.

계산대 입구 쪽에 은행 계좌번호를 붙여두었다.

계좌의 주인은 남편인데, 여성의 흔한 이름 중 하나라, 다들 내 이름인 줄 안다.

그래서 나는 ‘이사장’, 내 성씨인 ‘홍사장’으로 번갈아 불린다.

‘사장님’, 때로는 ‘사모님’, 때로는 ‘이모’, ‘아줌마’, ‘언니’, ‘누나’, ‘자기야’ 등등.

‘저기요’까지는 나쁘지 않다. 그래도 듣기에 좀 불편한 건, ‘어이!’.

어이가 없다.


말은 나의 생각과 행동이 담겨있는 그릇이자 미리 보기의 척도.

물론 어떤 호칭으로 불려도 웃으며 맞이하고 응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예쁜 입으로 예쁘게 불러주시면 더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우리 가게는 주점이지만, 어린이 단골이 유독 많다.

돌쟁이부터 고등학생까지, 자녀의 나이대도 참 다양하다.

번화가가 아닌 주택가의 구도로에 위치해 있고, 두 곳의 초등학교와 인접해 있어서일까.

술손님은 늦은 저녁부터 들어오기 때문에, 오픈 직후에는 식사를 위해 자녀를 데리고 오시는 단골 가족들도 많다.

그래서 수많은 나의 호칭 중에서는, 그냥 ‘이모’가 아닌 ‘뻔뻔이 이모’도 있다.


연인이 부부가 되고, 부부가 부모가 되어 돌아오는 단골도 많다.

결혼한다고 수줍게 전하는 청첩장을 받으면, 특별한 일정이 없는 이상 꼭 가서 축하해 드리려고 노력한다.

그뿐인가. 손님의 뱃속에 있던 첫째를 만난 것이 몇 년 전인데, 외동이 자매가 되고, 자매가 삼 남매가 되어, 막내의 돌잔치 선물을 챙겨주시는 단골도 있다.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은 뻔뻔이 아주 익숙하다.

아이들에겐 이미 즐겨 먹는 자기만의 메뉴가 있다.

“이모~ 짜계치(짜파게티+계란+치즈) 먹을 건데요, 치즈는 빼 주세요.”

ㅡ “그래, 그럼 ‘짜계’만 줄게.”

“이모~ 제가 먹는 우동 하나 주세요(기호에 따라 가감된).”

“이모오~ 반.건.조.오.징.어. 주떼요(벌써 마른안주의 감칠맛을 알아 버린 6살!!!).”

“이모~ 케첩 더 주세요.”
 “이모~ 아니, 사장님, 아니 이모~ 콜라 꺼내갈게요. 저 이제 맨 위에 손 닿아요.”

“이모, 나 쉬야 안 할래요. 누가 화장실 물 안 내렸어요.”

ㅡ “응, 그래~ 이모가 얼른 치워줄게.”


몇 년을 교류하니 쑥쑥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고, 이제는 내 친조카만큼 반가운 것이,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 그대로이다.

아이들 크는 모습에 우리 부부도 진짜 이모, 삼촌이 된 것 마냥 뿌듯하고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냉장고 벽에 붙여놓고 간 단골 화백1의 작품_“이모도 사랑해.”_ⓒ뻔뻔
냉장고 벽에 붙여놓고 간 단골 화백2의 작품_“행복을 빌어줘서 고마워.”_ⓒ뻔뻔

“이사장~ 이따 우리 애 좀 잠깐 봐줄 수 있어? 학원 갔다 여기로 올 거야. 배고프다고 뭐 먹으면, 내 앞으로 달아놓고.”

“사장님~ 아니 이모~ 우리 엄마가 여기 잠깐만 있으래요.”

ㅡ “그래그래, 얼른 들어와.”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오늘 이곳 뻔뻔에서 그대로 구현되고 있는 듯하다.

각박한 개인주의, 범죄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이런 속담이 너무도 무색하지만, 이 동네는 아직도, 정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 작은 사거리 가게끼리 붕어빵을 나눠 먹고, 카레를 많이 했다고 한 바퀴 돌리고, 휴무로 지방이라도 놀러 갔다가 오면 손에 들려 있는 특산물이나 간식들.

옆 호실에서 누가 사는지,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도 몰랐던 자취생활에서는 몰랐던 따스함이다.


결혼 후 남편에게도 자주 얘기했었다. 이 동네는 ‘중랑구’가 아니라 뭔가, ‘중랑군’ 같다고.


돌 지난 이쁜 아가가, 고 작은 손으로 탕수육을 집어 오물오물 먹고 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난임 시술을 받던 단골분의 둘째 아기다.


내가 어린이 손님 가족을 살갑게 챙기고, 이뻐 죽는다는 눈빛을 흘릴 때마다, 사정을 모르는 손님들께 질문이 들어온다.
 “사장님 애기는 몇 살이에요?”

ㅡ “저희 늦게 결혼해서 아이는 없어요.”

부모님 연배의 어르신 손님들도 자주 물으신다.

“아니, 결혼한 지 얼마나 됐는데 좋은 소식이 아직 없어?”

ㅡ “아, 시험관 시술을 많이 했는데 잘 안 생기네요? 하늘에서 둘이 이쁘게 살라는 건가 봐요.”

그냥 툭 까놓고 말씀드린다.

“아이고... 입이 방정이야. 그거 힘들다던데, 고생했네.”

시험관 얘기만 나오면 대부분, 더 이상은 묻지 않으신다(물론, ‘내 딸이 다녔던 병원이 잘하는데 소개해 줄까?’, ‘아니, 애를 낳으면 어떡해! 등등의 분들은 아직 있지만).


우리 부부는 각각 사십 전/후반에 결혼을 했다.

매우 늦은 결혼이어서 바로 산전검사를 했고, 둘 다 난임판정을 받아 시험관 시술의 길로 들어섰다.

코로나가 계속되던 2년 몇 개월 간, 나의 난임 시술도 두 자릿수가 채워져 열 번이 넘었다.


그 시술 기간의 과정에서 내 몸은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고, 당사자가 아닌 그 누구도 공감해 줄 수 없는 고통에 마음은 바작바작 말라갔다.

배우자로 인해 힘든 기간이기도 했지만, 또한 그 배우자 덕분에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공감은 해 주기 어려울지언정, 곁에 있어줄 수는 있으니까.

단골에서 언니가 된 이웃들도, 같은 여자로서 함께 손 잡아 주어 힘이 된 시기였다. 

<우리 부부>_작가님이 주기적으로 검사하러 온다, 떼면 아주 혼난다._ⓒ뻔뻔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들은 부모 외에도, 이웃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쑥쑥 자란다.


어른들도 자란다.

스펀지처럼 그대로 흡수하는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력을 끼치면 안 되니까.

함께 온 부모 단골들은 자녀들이 있을 때에는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들도 자란다.

나도 가게 주변과 사람들을 잘 챙기면서, 더 좋은 이웃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단골손님의 삼 남매 중 큰 딸의 청첩장을 받을 때까지, 내가 이 뻔뻔에서 있으려면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손을 꼽아도 본다.


나는야 뻔뻔이 이모.

너도 자라고 나도 자라는,

우리의 성장일기가 쓰여지는 특별한 주점.

뻔뻔은 오늘도, 사랑받고 있다.

손님이 주신 간식이며 먹거리들, 기억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_ⓒ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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