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는 나름 큰 규모의 축제가 된 지 꽤 되었고, 해마다 이름난 가수들이 무대를 오간다.
축제장이 가까운 구도로에 위치한 우리 가게는, 평소에는 99% 단골로만 운영되다가 장미축제 기간이 되면 소위 뜨내기손님들로 북적거린다.
단발성 발걸음이겠지만, 축제라는 분위기와 중랑구의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기분 좋게 드실 수 있도록 마음 쓰게 된다.
장미축제의 정점이었던 지난 주말, 가게는 엄청 바빴다.
홀은 여섯 테이블뿐이라,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장테이블도 두어 개 깔아 둔다.
테라스가 아니라 길바닥에 깔아 둔 야장테이블이고, 계단 서너 개를 오르내리며 서빙을 하려니 그게 몇 시간 되면 힘든 게 사실이다.
테이블이 한 개만 늘어나도 매출은 눈에 띄게 달라지지만, 내 도가니도 눈에 띄게 후달림은 어쩔 수 없다.
날이 더워질수록 시원한 생맥주도 더 나간다. 한 손에 세 잔씩(세 잔이 나의 한계). 야장으로 나르는 손목도 점점 힘이 빠져간다. 손목의 퇴행성관절염은 이미 상당히 진행상태. 요식업 사장님들 중에서 어디 한 곳, 고장 나지 않은 분들이 있을까?
“왜 여긴 일찍 안 열었어? 딴 데는 다 몇 시간 일찍 열더구먼.”
주변 상가들은 축제에 맞춰 다들 일찍 열지만, 우리는 평소처럼 오후 5시에 오픈한다. 일찍 열어서 몇 테이블 더 받을 수는 있지만, 아침까지도 손님이 계시는 때가 심심찮기에 우리의 흐름대로 운영한다.
그 몇 테이블이 5월의 우리 매출을 뒤바꿀 수도 있겠지만, 무리하면 탈이 난다는 것은 애저녁에 경험했다. 조금 더 벌자고 피로는 누적되고, 어깨며 손목은 고장 나고. 결국 한의원이든 정형외과든 병원 신세를 지게 되고, 도수 치료라도 몇 번 받으면 ‘그 돈이 그 돈’인 셈이 되어 버린다.
비교하지 않는다. 너무 욕심내지 않는다. 우리의 속도대로 우리의 시간을 산다. 현재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살고 있다.
가게의 마감은 새벽 5시지만, 토요일엔 아침 7시까지 손님이 계셨다. 주말의 흥을 깨고 싶지는 않으니, 단골손님이면 되도록 기다려 드리는 편이다. 대신 다음날 집안을 돌봐야 하는 나는 조금 일찍 들어간다.
“여자 사장님이 좋아서, 이 가게를 오시는 거래.”
7시까지 계셨던 단골 분들이 남편을 통해 전해달라고 하셨다는 말. 우리가 밝게 맞이해 주는 게 좋아서 오신다는 그 말 한마디로 어제의 피로가 좀 씻기는 기분이다.
바쁜 와중에도 짬짬이 남편과 대화하는 건 잊지 않는다.
‘정신없이 바쁘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 <아에이오우>라도 하면서 근육을 풀어주고, 일부러 미소를 지으며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얘기들을 나눴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굳은 표정, 무표정이 되어 버리는 건 당연하다. 적어도 일하는 동안에는 기분 좋은 미소로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편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도, 손님 때문에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어리는 순간에도,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올려 볼때기에 매달아 둔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끼고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스크 안의 내 얼굴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마스크로도 결코 숨길 수 없는 표정이 있다.
그래서 마스크 안의 얼굴 공간에서도 미소를 짓기 위해 애썼다. 미소를 지은 눈은 무표정의 눈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누가 알아채주지 않아도 의식하고 또 의식했다.
힘든 순간이 왜 없을까. 이번 축제 기간은 특히 더했다. 포스기에 찍힌 매출액이 괜찮아도 미소는 저절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아직 겪어본 적은 없지만, 매출이 어마어마하다면 웃음을 숨길 수 없으려나?).
사람을 좋아하는 나 역시도 힘든 손님, 불편한 손님, 피하고 싶은 손님이 있다.
그 테이블에 갈 때면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더욱 올려 짓는다. ‘난 손님이 그닥잖아요.’라는 마음, 불편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사람 호불호야 누구나 있고, 생각하는 건 자기 마음 이겠지만, 부정적인 그 마음이 나를 주장하게 두고 싶지는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