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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뻔펀한 홍사장 May 09. 2024

확신의 국물

입맛도 각양각색, 마음도 각양각색

"어머, 사진과 정말 똑같네요?!"


유린기를 테이블에 놓아드리니 손님이 하신 말씀.
지도 앱메뉴사진을 보고 찾아왔는데, 실물 음식이 사진과 똑같다며 좋아하신다.
유린기에 만족하셨는지 해물짬뽕도 주문하셨다.


테이블에 음식이 나가면 나는 눈치껏 손님들의 첫 술을 살핀다. 특히 처음 오신 분들의 반응을 유심히 체크하는 편이다.
유린기를 주문하셨던 손님들이 짬뽕 국물을 한 술 신다. 두 숟가락, 세 숟가락.......
됐다. 국물요리는 몇 숟가락 연달아 쉼 없이 드시면 볼 것도 없다. 확신의 국물이다.

"사장님, 오늘 깐풍기가 좀 짜네. 뭐 채소 좀 더 넣어서 간을 맞출 수 있을까?"


몇 번 오셔서 친근해진 손님은 평소보다 간이 짜다며 맛을 보라고 하신다.
“네, 저희도 한 번 체크하고, 수정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볼게요.”

안 된다는, 못 한다는 대답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간을 봤고, 우리 둘의 입에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손님이 짜게 느끼셨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
그 메뉴는 싱겁게 해 드리기는 어렵고, 맞춰도 맛이 떨어지니 오늘은 주문에서 빼 드리기로 한다.


손님은 멋쩍어하시며 "요즘 우리가 좀 싱겁게 먹어서... 대신 소주 더 마실게."라고 하시곤 양장피를 추가 주문하신다.
양장피를 살짝 싱겁게 신경 달라고 주방에 부탁하고, 괜한 미안함을 갖지 않으시도록 마음을 풀어드리는 것은 나의 몫.

손님이 양장피를 싹싹 비우고 가신 후, 가게는 꽤 한산했고 우리 부부는 긴 대화를 나눴다.
홀 담당인 나는 맛이 안 맞을 때 다른 방식을 찾아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질문을 했고, 남편은 조절할 수 없는 음식을 억지로 맞출 수는 없으니 빼 드리는 것이 맞다고 한다.
같은 음식을 다시 해 드린다고 해도, 그날의 입맛과 컨디션에 따라 똑같이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번에는 깔끔하게 값을 받지 않고, 다음을 좋게 기약하는 것이 더 낫다는 지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본인의 감각에 따라 맛을 주관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보편적인 맛있음이 있을까도 싶지만, 아무리 소문난 맛집, 유명한 달인의 음식이라도 내 입에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입맛도 각양각색일 테니까.


누구나 입이 까슬하거나 쓴 날도 있고, 유난히 음식이 달게 느껴지거나 맵게 느껴지는 날도 있지 않은가?
오랜 주방생활을 한 남편이지만, 그 또한 컨디션에 따라 음식맛을 맞추기 힘든 날이 있다고 인정한다.
뼛속부터 요리사인 남편은 맛있게 못 드시고 보내드리는 게 스스로에게 가장 불만족스럽다고 한다.
우리가 먹어서 짜지 않다고 해도, 될 수 있으면 맞춰드리고 기분 좋게 드시게 하자고.


손님의 입맛이 절대적일 수는 없겠지만,
'손님, 저희 입에는 안 짠데요?', '다른 분들은 다 맛있게 드시는데...'
적어도 이런 토를 달면서 마음맛까지 씁쓸하게 해 드리지는 않도록 노력한다.


맛을 내는 못지않게, 식재료의 퀄리티를 균일하게 관리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제철 재료가 아닌 경우에는 의 기본값이 들쭉날쭉, 똑같은 호수의 새우를 주문해도 수율(水率)과 염도의 차이가 오락가락하니 남편은 항상 재료 주문에 고심을 한다.
그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늘 비슷한 결괏값을 내고자, 간을 보고 또 보는 것이 주방장의 일상.


특히 관리가 까다로운 재료는 아무래도 육산물보다 해산물이다.
중식요리 기반인 안주가 많아서, 우리 메뉴판에는 홍합이 들어가는 요리가 꽤 있다.
홍합 철이 아닐 때는 크기도 작고 맛이 풍부하지 않기도 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맑은 물을 흐려놓듯, 어정쩡한 맛의 홍합 한 개가 딱 들어가면, 나머지 홍합이 다 싱싱해도 그 짬뽕의 국물은 평소만 못하다.

확신의 국물은 온데간데없다.

마침 어정쩡한 홍합이 민감한 손님에게 첫 입으로 당첨되면 그분에게 그 짬뽕은 이미 '배려버린 맛'인 것이다.


미각이 대장금인 남편이나 보편적인 입맛의 내가 먹어봐도, 이 정도면 조리하기에 나쁘지 않은 상태의 식재료가 있다.
근데 그 나.쁘.지.않.은. 상태가 애매모호할 때, 남편은 되도록 파격적으로 식재료를 처분하는 편이다.


홀은 퍼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방은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요식업을 경영하는 한 유명 유튜버의 인데, 작디작은 주점이 과감하게 식재료를 버리는 것이 솔~직히 난 좀 아깝다.
그거 버릴 거면 나한테라도 한 접시 만들어주라고 불퉁대기라도 하면, 우리도 싱싱한 재료로 만들어 먹자고, 우리도 맛있게 먹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남편.
뼛속부터 요리사인 게 좋기만 한 건지 아닌 건지, 자영업이 처음인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스팸을 안 쓰면서 스팸김치찌개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비싸도 나는 스팸 쓰는 거야."
장사꾼의 마인드가 아닌지라 때로는 답답해 보이기도 하는 남편이지만, 그의 뚝심이 마냥 미련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함께 응원해주고 싶은 나도 장사꾼이 되기에는 영 그른 듯싶다.


저희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신 손님~

만족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혹여 다시 오지 않더라도 어색하게 안녕하지 않도록, 미안했거나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고 해도 마음맛만은 달게 가져가셨길.

마음맛이 달았다면 또 찾아 주시리라 믿으며, 오늘도 좋은 식재료 사냥꾼이 되어 발품 팔고 손품도 팔아본다.

상기 이미지는 실제 음식과 똑같습니다✌️_ ⓒ뻔뻔


*커버 이미지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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