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린기를 테이블에 놓아드리니 손님이 하신 말씀. 지도 앱의 메뉴사진을 보고 찾아왔는데, 실물 음식이사진과 똑같다며 좋아하신다. 유린기에 만족하셨는지 해물짬뽕도 주문하셨다.
테이블에 음식이 나가면 나는 눈치껏 손님들의 첫 술을 살핀다. 특히 처음 오신 분들의 반응을 유심히 체크하는 편이다. 유린기를 주문하셨던 손님들이 짬뽕 국물을 한 술뜨신다. 두 숟가락, 세 숟가락....... 됐다. 국물요리는 몇 숟가락 연달아쉼 없이 드시면 더 볼 것도 없다. 확신의 국물이다.
"사장님, 오늘 깐풍기가 좀 짜네. 뭐 채소 좀 더 넣어서 간을 맞출 수 있을까?"
몇 번 오셔서 친근해진 손님은 평소보다 간이 짜다며 맛을 보라고 권하신다. “네, 저희도 한 번 체크하고, 수정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볼게요.”
안 된다는, 못 한다는 대답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간을 봤고, 우리 둘의 입에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손님이 짜게 느끼셨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 그 메뉴는 싱겁게 해 드리기는 어렵고, 맞춰도 맛이 떨어지니 오늘은 주문에서 빼 드리기로 한다.
손님은 멋쩍어하시며 "요즘 우리가 좀 싱겁게 먹어서... 대신 소주 더 마실게."라고 하시곤 양장피를 추가 주문하신다. 양장피를 살짝 싱겁게 신경 써달라고 주방에 부탁하고, 괜한 미안함을 갖지 않으시도록 마음을 풀어드리는 것은 나의 몫.
손님이 양장피를 싹싹 비우고 가신 후, 가게는 꽤 한산했고 우리 부부는 긴 대화를 나눴다. 홀 담당인 나는 맛이 안 맞을 때 다른 방식을 찾아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질문을 했고, 남편은 조절할 수 없는 음식을 억지로 맞출 수는 없으니 빼 드리는 것이 맞다고 한다. 같은 음식을 다시 해 드린다고 해도, 그날의 입맛과 컨디션에 따라 똑같이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번에는 깔끔하게 값을 받지 않고, 다음을 좋게 기약하는 것이 더 낫다는 지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본인의 감각에 따라 맛을 주관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보편적인 맛있음이 있을까도 싶지만, 아무리 소문난 맛집, 유명한 달인의 음식이라도 내 입에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입맛도 각양각색일 테니까.
누구나 입이 까슬하거나 쓴 날도 있고, 유난히 음식이 달게 느껴지거나 맵게 느껴지는 날도 있지 않은가? 오랜 주방생활을 한 남편이지만, 그 또한 컨디션에 따라 음식맛을 맞추기 힘든 날이 있다고 인정한다. 뼛속부터 요리사인 남편은 맛있게 못 드시고 보내드리는 게 스스로에게 가장 불만족스럽다고 한다. 우리가 먹어서 짜지 않다고 해도, 될 수 있으면 맞춰드리고 기분 좋게 드시게 하자고.
손님의 입맛이 절대적일 수는 없겠지만, '손님, 저희 입에는 안 짠데요?', '다른 분들은 다 맛있게 드시는데...' 적어도 이런 토를 달면서 마음맛까지 씁쓸하게 해 드리지는 않도록 노력한다.
맛을 내는 일 못지않게, 식재료의 퀄리티를 균일하게 관리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제철 재료가 아닌 경우에는 맛의 기본값이 들쭉날쭉, 똑같은 호수의 새우를 주문해도 수율(水率)과 염도의 차이가 오락가락하니 남편은 항상 재료 주문에 고심을 한다. 그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늘 비슷한 결괏값을 내고자, 간을 보고 또 보는 것이 주방장의 일상.
특히 관리가 까다로운 재료는 아무래도 육산물보다 해산물이다. 중식요리 기반인 안주가 많아서, 우리 메뉴판에는 홍합이 들어가는 요리가 꽤 있다. 홍합 철이 아닐 때는 크기도 작고 맛이 풍부하지 않기도 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맑은 물을 흐려놓듯, 어정쩡한 맛의 홍합 한 개가 딱 들어가면, 나머지 홍합이 다 싱싱해도 그 짬뽕의 국물은 평소만 못하다.
확신의 국물은 온데간데없다.
마침 어정쩡한 홍합이 민감한 손님에게 첫 입으로 당첨되면 그분에게 그 짬뽕은 이미 '배려버린 맛'인 것이다.
미각이 대장금인 남편이나 보편적인 입맛의 내가 먹어봐도, 이 정도면 조리하기에 나쁘지 않은 상태의 식재료가 있다. 근데 그 나.쁘.지.않.은. 상태가 애매모호할 때, 남편은 되도록 파격적으로 식재료를 처분하는 편이다.
홀은 퍼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방은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요식업을 경영하는 한 유명 유튜버의 글인데, 작디작은 주점이 과감하게 식재료를 버리는 것이 솔~직히 난 좀 아깝다. 그거 버릴 거면 나한테라도 한 접시 만들어주라고 불퉁대기라도 하면, 우리도 싱싱한 재료로 만들어 먹자고, 우리도 맛있게 먹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남편. 뼛속부터 요리사인 게 좋기만 한 건지 아닌 건지, 자영업이 처음인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스팸을 안 쓰면서 스팸김치찌개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비싸도 나는 스팸 쓰는 거야." 장사꾼의 마인드가 아닌지라 때로는 답답해 보이기도 하는 남편이지만, 그의 뚝심이 마냥 미련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함께 응원해주고 싶은 나도 장사꾼이 되기에는 영 그른 듯싶다.
저희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신 손님~
만족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혹여 다시 오지 않더라도 어색하게 안녕하지 않도록, 미안했거나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고 해도 마음맛만은 달게 가져가셨길.
마음맛이 달았다면 또 찾아 주시리라 믿으며, 오늘도 좋은 식재료 사냥꾼이 되어 발품 팔고 손품도 팔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