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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뻔펀한 홍사장 Apr 30. 2024

뻔뻔의 음악앨범

너를 위해(a.k.a. 전쟁 같은 사랑)

출근하면 포스기로 전산과 음악부터 켠다.
늘 첫 번째로 시작되는 음악은 제일 좋아하는 가수인 임재범의 <너를 위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청소를 하는 것이 가게를 여는 하루의 시작이다.

12시간 가까이 음악이 멈추지 않기에,

최신가요 top100이나 알고리즘에 의존한 플레이리스트가 아닌, 될 수 있으면 내가 듣고 싶고 질리지 않는 노래로 선곡해 두는 편이다.
봄날, 비 오는 날, 스산한 날... 내 마음의 날씨에 맞춰 틀어놓는 음악들은 내 세대에 유행했던 노래고, 손님들의 나이대 또한 위아래로 크게 다르지 않아 대부분 공감하며 좋아해 주시는 편이다.

“사장님, 지금 이 노래 제목이 뭐예요?”, “가수가 누구죠?” 질문은 꽤 많이 들었고, 심지어 제목 맞추기 내기를 하면서 드시는 테이블도 종종 있다. 우리 부부는 언제나 이 내기의 심판.
얼근히 술기운이 오른 야심한 시간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남자 발라드가 나오면 손님들이 다 같이 떼창을 하는 진풍경을 보게 되기도 하고, 다음 코스는 흥 난 김에 노래방이야 하면서들 바이바이 하신다.


왁자지껄 만석이 되면 주점의 분위기도 달아오른다.
그럴 때는 곧바로 발라드에서 댄스로 선수 교체.
남편의 도마는 칼춤을 추고 잔은 더 빨리 비워지니까.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세기말 댄스곡.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둠칫 두둠칫. 내적 댄스가 아니라 대놓고 리듬을 타는 편이다.
댄스곡에 맞춰 주방 안에서 춤을 추다가 손님의 눈과 마주쳐버렸다.
그 테이블의 모든 분이 웃는 걸 보니 한꺼번에 보신 것 같다.
하......, 부끄럽지 않아. 손님들이 즐거우셨으면 됐지.

부모가 행복해야 자라나는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처럼, 일하는 내가 즐거워야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응대한다. “2차까지 마시고 3차로 왔는데 환하게 웃어주는 가게는 오늘 여기가 처음이네.”라며 반겨주는 손님도 있지만, 항상 밝은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떤 직군, 직종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구나 이곳은 깔끔하게 식사만 하고 가시는 음식점이 아닌 주점, 바로 술.집.

술을 마시는 이유가 제각각인 것처럼, 손님의 알콜 바이오리듬도 모두 처음처럼 부드럽고 참이슬같이 맑을 수는 없다. 손님의 기분, 표정, 말투에 일일이 반응하고 의미를 둔다면 내가 먼저 지치고 가라앉게 된다. 한 잔 하자고 권하는 손님이든,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 손님이든 순발력 있게 넘어가고 요령껏 대처하는 센스가 필수다.


‘내가 제일 소중해요, 내 감정이 먼저예요.’ 과연 주점 사장에게 그런 게 가당한 일일까?
행복해지기 위해 시작한 자영업인데 참으로 고약하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빵빵 터질 때면 따박따박 월급 받던 직장생활이 그립고 ‘에잇~ 다 때려쳐!’하며 뛰쳐나가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음악을 튼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때론 춤도 춰 본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내 마음을 채우고 얼굴근육을 움직여 한껏 미소를 연습해 본다.
어쩌면 전쟁, 어쩌면 사랑인 이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싶다.
행복한 날은 행복한 내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거니까.


어쩜 우린 복잡한 인연에
서로 엉켜있는 사장과 손님

나는 매일 손님께 갚지도 못할 만큼 많은
감사함을 안고 있어

와 주시면 연인처럼 이사 갈 땐 때론 남남처럼
계속 살아가도 괜찮을 수밖에

그렇게도 많은 실수와 잦은 이별에도
항상 거기 있는 뻔뻔

날 세상에서 밥벌이하며 제대로 살게 해 줄
유일한 사람이 손님이란 걸 알지

나 후회 없이 매상 올리기 위해
손님 붙잡아야 할 테지만

매출 곡선을 지켜보는 남편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이건 아마도 전쟁 같은 하루

자영업은 위험하지만 사랑하니까
이곳에서 머물러 줄게

손님 위해 새벽까지

ⓒ뻔뻔


*커버 미지_ⓒ모노하 포스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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