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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뻔펀한 홍사장 Apr 30. 2024

고무장갑 원더우먼

전우들이여, 아쿠마의 흔적을 처리하자!

“사장님, 화장실 바닥에 누가 토했나 봐. 한 번 가 봐야겠어.”
다급하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단골 여자 손님이 귓속말을 건넸다.
‘이그… 또야, 또…’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나는 익숙한 몸짓으로 가게 안의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안의 상태는 예상과 별다를 바 없었다. 십여 분간의 씨름을 마치고 의기양양한 듯 나온 뒤 좀 전의 단골손님께 이제 화장실에 들어가셔도 된다고 손 안내를 했다.

영화 ‘곡성’의 아쿠마처럼, 우리 가게에도 자주 출몰하는 아쿠마가 있다. 그 정체는 바로 ‘화장실 아쿠마’.
마치 암호와도 같이 “아쿠마 출몰”이라고 말한 뒤 출동하면 신랑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화장실로 향하는 손님들께 잠시 청소 중임을 안내한다(아쿠마로 명명된 손님들께는 살짝 죄송한 마음;;;).
 
때론 남편에게 우리도 공동화장실이 있는 건물로 옮겨서 화장실만큼은 신경 좀 안 쓰고 싶다는 푸념도 해 본다.
작은 주점 사장에게 화장실 청소는 그 어떤 청소보다 하드코어 한 미션이기에 되도록 극한의 상황은 마주하고 싶지 않다.


나는 늘상 생각한다. ‘와… 진짜 고무장갑 없으면 나 이거 어떻게 다 청소하나 몰라. 고무장갑 니가 찐이다. 찐.’
청소나 정리라기보다는 해치워야 하는 상황이 더욱 많은 술집에서 고무장갑을 낀다는 것은 마치 전장에 나가는 것과도 같다.
그 어떤 전시 상황에서도 고무장갑만 있다면 망설임 없이 재빠르게 적들을 물리치고 나올 수 있다. 비단 화장실 대첩이 아니더라도 고무장갑은 항상 나에게 고마운 전우가 아닐 수 없다.

매일 수많은 손님을 맞이하고, 다양한 상황과 마주하면서 속상할 때도 많고, 다시 월급쟁이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수없이 한다.
그럼에도 가게를 찾아주시는 고마운 손님들을 생각하면, 웃기 어려워도 미소 지어야 하는 상황들도 많고, 속으로만 삭이고 넘어가야 하는 일들도 다반사다. 때로는 남편에게도 푸념할 수 없는 마음의 너덜거림도 생기고.


고무장갑을 꼈을 땐 사악한 불순물도 두렵지 않고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강적도 망설임 없이 처리해 버리는 것처럼, 마음에도 때가 묻어나지 않도록 감싸주는 덮개나, 아물고 있는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방패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전장에 직접 나서서 이 두 손으로 고무장갑을 끼고 처리할 수밖에 없는 노릇.


이 마음이란 것도, 내 힘과 내 의지로 감싸주고 지켜줘야 하는 일들이 필요한 것이겠지.
피하고 싶다고 다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외부의 아쿠마가 아닌 내 안의 아쿠마(스트레스)와 싸워 이기며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한 사람, 한 인생들의 전장이겠지.

그래, 나에게는 오늘도 고무장갑 전우가 있다. 청소솔도 있고 뚫어뻥도 있지.
전쟁 같은 하루가 시작돼도 두려워 말고 오롯이 마주하는 내가 되기를. 이 하루의 싸움에서 지지-GG 치지-않는 내가 되기를 나의 전우들과 함께 간절히 바래본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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