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뻔펀한 홍사장 Apr 30. 2024

초상에 대한 추상

너와 나의 초상(肖像)

남편 삶의 스타일은 심플리스트이다.
큰 물욕이 없어서 남자들의 로망일 수 있는 슈퍼카, 명품시계, 구두...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고 자신의 소유 범위에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다.
가게도 그 취향과 다르지 않게 화려하거나 눈에 띄는 장식물이 거의 없다. 되려 뭔가 너무 없어서 심심하고 눈에 띄지 않는 편.
가게에 손님으로 처음 왔을 때는 작고 허름해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미니멀 살림을 지향하면서 낡았어도 깨끗하기만 하면 되지, 맛과 친절에 더 신경 쓰자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허전한 가게 벽면에 유일하게 알록달록한 색감이 눈에 띄는 것은 남편의 캐리커쳐.
가게 오픈 즈음 인사동에서 만 오천 원인가 주고 그렸다고 하는데 누가 봐도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닮았다. 화가분 누구신지 모르지만 특징을 제대로 살려서 잘 그리셨다.
간혹 손님들도 “사장님 맞죠? 그림이 너무 닮았어요.”하면서 캐리커처에 손가락을 가리키는데, 본인이 걸어놨음에도 남편의 반응은 생뚱맞다. “저 맞긴 한데 실물이 더 낫죠. 못 그렸어요 못 그렸어.”라며 그림보다 실물이 낫다고 대거리를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손님, 특별히 콧구멍 표현이 끝내주죠? 진짜 잘 그렸어요. 오호호”라고 한 술 더 떠서 손님 편에서 응수한다. 남편의 반응이 매번 재미있어서이다.

손님들이 가시거나 주방에서 둘이 있을 때 “아까 왜 내 편 안 들어줬어요?”라며 남편은 반 장난으로 불뚱거린다. 아무리 캐리커쳐라고 해도 눈썹과 콧구멍이 지나치게 희화화되어서 맘에 들지 않는단다.
그치, 실물이 낫지, 콩깍지가 아직 안 벗겨진 아내 눈에는.
그런데 그림은 본인이 직접 걸었잖수? 손님들이 보고 즐거워하면 그걸로 된 거지. 아님, 실물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건지? 남자들은 거울을 볼 때마다 실물보다 낫게 여기고, 여자들은 단점만 찾는다고 하는데 우리 남편도 그런 건가.

하긴. 나도 거울을 볼 때마다 장점보다는 못난 부분만 눈에 띈다. 불독살, 기미는 당연한 거고 미간의 세로 주름과 턱선의 불균형 등 비뚤어진 모습만 보인다. 좌우반전을 해도 균형이 딱 맞는 사람이 있다던데, 그건 차은우나 김태희 얘기겠지.
내 초상화나 캐리커쳐를 그린다면 아무리 실력 있는 화가에게 맡겨도 남편보다 훨씬 맘에 들어하지 않을 것 같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요목 조목 단점만 찾아보겠지.


내가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생경할 때가 많다.
타인에게는 공기의 떨림으로 전달되어 내 목소리가 들리지만, 자신에겐 두개골의 울림으로 전달되기에 그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거울을 통해 내가 보는 나의 얼굴과 타인이 보는 나의 얼굴 또한 차이가 크다고 한다.
‘실제 내 얼굴 확인하는 4가지 방법’, ‘남이 보는 진짜 자기 얼굴 아는 법’, ‘무반전 거울 판매’. 이런 연관 검색어가 주르륵 뜨는 것을 보면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의 얼굴이 궁금한 사람이 나 말고도 많은 것 같다.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고 살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내 얼굴에 책임을 질 나이는 훌쩍 지나가고 있다. 내가 가졌던 감정, 말투, 행동 모든 것이 내 얼굴을 만들어 왔을 텐데.
어떨까? 타인에게 보이는 내 얼굴, 내 표정, 내 모습. 괜찮게 보이는 걸까.
코코 샤넬은 ‘스무 살의 얼굴은 자연의 선물이고, 쉰 살의 얼굴은 인생의 공적(功績)이다.’라고 하던데, 나는 노력과 수고를 들여 내 얼굴에 무슨 결과를 이루어 내고 있을까. 내 마음에는?
지천명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 가지만 여전히 내 얼굴에 책임을 지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때론 마음의 거울을 보기가 한없이 부끄럽고 두려워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 5시면 손님들과 마주하게 된다.
콧구멍으로도 웃음을 줄 수 있는 남편의 얼굴처럼, 매출에 찌든 모습보다는 환한 미소와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초상에 책임을 질 수 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아오~ 그 눈썹과 콧구멍까지도 사랑해볼게요. ⓒ뻔뻔
이전 01화 술이 땡기면 당겨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