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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뻔펀한 홍사장 Apr 30. 2024

술이 땡기면 당겨주세요~

어서 오세요. 뻔뻔입니다.

가게 출입문이 망가졌다.
삐꺼덕 끼익끽.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 다음으로 거슬리는, 쇠 긁히는 소리.
엄연히 당기시오 팻말이 붙어있는 문을 당연한 듯 밀고 들어오는 손님들 덕분에 수평이 계속 어긋나 수리를 하게 되었다.

밀어서 열린 틈 사이로 낑낑거리며 몸을 욱여넣는 덩치 큰 손님들. 버젓이 쓰여 있는 문구를 무시하고 “문이 왜 이래.”라며 문을 탓하는 손님들도 있다. 심지어는 그 열린 틈으로 굴비 엮듯 뒷 손님까지 줄줄이 끼여 들어오는 광경까지 심심치 않다.
밀어서 열리지 않는다면 한 번쯤은 자기 몸 쪽으로 당겨서 열면 좋으련만. 굳이 굳이 겨우 열린 틈으로 힘겹게 들어오는 손님을 보면 마음의 외침이 끊이지 않는다. ‘당기시오 안 보여요? 당겨주세요. 제발 좀 당기라고요!’


코로나19가 잦아들고 영업제한이 해제되었을 때 나는 A4 사이즈만큼 큼지막한 ‘당기시오, 미시오’ 팻말부터 구매해 눈높이로 떡 하니 붙여 놓았다. 붙어있는 팻말이 너무 작아서였나 싶어서다. 새벽배송으로 받아 서둘러 부착하는 나를 보며 신랑은 말했다. “우리 여보야, 단단히 짜증 났구먼. 근데 글자가 아무리 커도 사람들은 밀고 들어올걸요.” 웬걸, 정말 손님들 눈에는 이 큰 표시가 보이지 않는 걸까. 가뿐하게 무시해 주시며 여지없이 밀고 들어와 주셨다.

그 광경이 하도 이해가 되지 않아 혹시 해당되는 연구결과라도 있을까 싶어 검색을 했다. 논문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년 전 신문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사람이 가장 못 읽는 말’이라는 부제를 단 내용인데 “당기시오”라는 말의 뜻을 우리나라 사람은 유독 이해를 못 하고 따르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문구를 더덕더덕 붙이고 아무리 안내를 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당기기보다는 조금 더 수월한 밀기가 편해 일단 밀고 본다는 심리학과 교수의 의견. 힘이 들지 않아 편해서 민다는 신경과 전문의의 의견*. 운동 방향 그대로 관성의 법칙처럼 민다는 의견 등 다양한 시각의 기사였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을 보면 대문 자체가 밀고 들어오게 되어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인식한 한국인의 습성이자 서양인들보다 기다림과 배려가 부족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사바사, 케바케라는 말처럼 손님 바이 손님이겠지만, 나는 행동을 마치 카테고리와 같이 분류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싶었다. 밀고 들어오는 손님들 중 열에 일곱 정도는 옆 테이블에 손님이 있어도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고, 통로를 막고 앉는 쩍벌남의 태도나 ‘아줌마!’, ‘어이’ 하며 주문을 하는 투박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런 손님들은 대부분 뭔가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이 내용을 놓고 대화를 했던 남편과도 의견이 일치했다.

밀당의 상황을 판단하고, 당겨야 하는 문은 당기고 밀어야 할 문은 밀며, 뒷사람이 들어올 때 문을 잡고 몇 초간이라도 기다려 주는… 당기시오는 어쩌면 배려의 행동이 아닐까? 뇌과학 연구 결과에서 배려하는 능력도 지능의 일부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 맘 편한 대로 나는 일단 ‘당기시오도 배려의 차원’ 일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손님들, 술 땡기면 당겨주시길 부탁드려요.
2024년은 당기시오, 미시오 제대로 한 번 잘해보자고요.
제발 밀당의 고수들이 되어 주세요, 제발요~~~!


* 한겨레 2019 “제발 당기시오” 써놔도 사람들이 문을 미는 이유

** 머니투데이 2016 ‘한국인이 못 읽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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