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 moments, not things
Collect moments, not things
- 파울로 코엘료
'카톡'
밤 9시에 딱 맞춰 울리는 카톡소리.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5시. 이제 막 일어난 오빠가 약복용 일지를 내게 보내주는 알림 소리다.
나의 요청으로 실험 일지 적듯, 이렇게 매일, 매일 하루에 3번 컨디션과 변화된 증상등을 정리해 보내준다.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지만, 이래야 안심이 된다.
처음 한국 병원에 진료받으러 갈 때도 그랬다.
한국에서 봐주시는 교수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가능한 한 빨리 오빠의 상태를 파악하실 수 있도록 프랑스에서 발급받은 모든 자료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처방받은 약물 이름과 농도, 전문의 소견서등도 한국어로 번역한 뒤 짧게 요약해 포스트잇으로 붙여뒀었다. 그리고 경련이 일어나기 전과 후, 경련을 야기했을 만한 일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기입했다. 물론 경련이 시작된 시간과 얼마나 지속됐는지까지도 모두 다 포함해 최대한 보기 쉽게 정리했었다.
목적에 맞게 착착 정리를 해 두는 능력이 필요한 전공에서 근 10년을 있다 보니 원래도 그랬던 성격이 이젠 정말 아예 굳어져 나 자체의 캐릭터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여하튼, 그래서 그랬나. 평생 써오던 갤럭시에서 아이폰으로 바꾼 날, 다른 것보다 앨범이 도저히 적응이 안 됐다.
갤럭시는 주제 별로 폴더를 만들어서 사진들을 촤르르 분리해 보관하기가 편했는데, 웬걸? 아이폰은 시간순차대로 하나의 폴더에 전부 몰아서 쭈-욱 저장되는 형식.
심지어 내가 새로운 폴더를 만들어도 기존 앨범에 이동시키려고 한 사진이 그대로 있고, 새로운 폴더에는 복사본 형태처럼 이동될 뿐이라 아무리 정리해보려고 해도 여전히 기존 앨범은 주제 없이, 오로지 시간순으로 사진이 가득가득 그대로 쌓여있더라. 정리되지 않는 걸 참을 수 없는 나는, 사실 요 근래까지도 늘 그게 그렇게 거슬렸었다.
그런데, 바로 어제.
오빠의 투약일지를 확인하고, 사진 아이콘을 누른 찰나, 1년 전 오늘의 추억이라며 아이폰이 작년, 오늘과 같은 날짜에 찍은 사진을 모아 보여줬다. 주제로 보면야 커플사진, 풍경사진 제각각 섞여있었지만, 작년이라는 시간 속 오늘과 같은 날짜에 담긴 순간, 순간들은 참 행복해 보였고 또 실제로도 정말 행복했었다.
예상치도 못했던 아이폰이 준비한 이벤트에 나는 결국 엉엉 울어버렸다. 작년의 우린, 이 날 이렇게 마주 보고 웃었구나 싶어서. 딱 1년 후의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그렇게 아이폰이 날 울리더라.
한참을 찬 바닥에 누워 울고 나니, '연금술사, 순례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을 쓴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떠올랐다. 그는 책 속에서, 그리고 책 밖에서 많은 명언들을 남겼고 또, 지금도 남기고 있지만 그가 한 말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다.
"사물이 아닌, 소중한 순간들을 모으세요."
요즘같이 경제학 서적이 베스트셀러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작금의 시대에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 부부 역시 이 시대적 흐름에 맞춰가지 못하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남편과 나는 생각해 보면 연애 때부터, 그리고 결혼하고 지금까지 참 많이도 놀러 다녔다. 어느 어른들 말마따나 정신머리도 없이 말이다.
울리는 아이폰을 보니, 가까운 도시부터 다른 먼 나라까지 곳곳에 남편과 내가, 우리가 있더라.
처음 오빠가 쓰러진 날, 그리고 남편의 병명을 알게 된 날, 우린,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며 행여나 각자가, 어쩌면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살아온 건 아닐까 두려워했었다. 그래서 더 자책했고, 부정하고 후회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아이폰 알람 속 우리의 모습을 보니 반성 속에서 후회는 지우기로 한다. 이 순간이 없었다면, 어쩌면 언젠가 한 번은 마주해야 할 지금과 같은 순간에서 우린 결국 다른 의미의 후회를 하고 있었을 테니까.
우린 그냥 소중한 순간들을 모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저금해 둔 소중한 순간들로 지금처럼 힘든 시기도 웃으며 단단하게 견뎌내기로.
곧 또 정오가 된다.
아이폰이 울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