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라니 Apr 12. 2024

암전이 되어버린 시시시작

울고 싶은 요괴딸

  연극은 암전에서 시작해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암전이 찾아오고 암전으로 끝난다. 관객에게 암전은 잠시 눈을 감는 시간이다. 곧 시작될 장면들과 이야기를 고요히 기다리는 시간이다. 어둠의 시간을 연극은 사용한다. 무대, 소품, 배우들의 의상이 재빨리 바뀌기도 하고, 낮이었던 시간이 새벽으로 달라져 있기도 하다. 연극을 보면 어둠이 새롭게 보인다. 어둠이 필요하다. 어린아이들에게 암전은 울음을 터뜨리게도 하지만, 어른은 암전이 되었다고 울지 않는다.  

  

  막막할 때, 마음은 어둠에 가까워진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풀리지 않을 것 같고, 이 상태가 지속될 것만 같다. 하지만 어둠은 언제나 빛으로 향해 가고 있다. 막막함이 뿌듯함으로 바뀔 수도 있다. 물론 막막함이 좌절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또다시 막막함이 찾아왔을 때 좌절에 이르지 않는, 딛고 일어서는 다른 접근법을 배우기도 한다. 심지어 좌절 대신 기다림이라는 단어로 그 자리를 잠시 비워 놓기도 한다. 



  "오늘은 '매미'를 소재 시 쓰기를 해볼게요."  

  똑순애는 눈을 반짝이는데 급한덕은 툴툴 댄다.  

  "생각나는 거 없어. 쓸 게 없어." 

  매미는 접근하기 쉬운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급한덕에게는 아니었나 보다. 

  "나 안 쓸래."

  급한덕은 심술 난 사람처럼 연필을 툭 내려놓았다.

  "그러면 급한덕은 지난 시간에 쓰겠다고 한 고라니에 대해 써보세요."

  요괴딸은 소재를 급 변경해 '고라니'를 써보라고 하니 그제야 급한덕은 다시 연필을 잡는다. 

 '되었다.'

요괴딸은 급한덕이 마음을 돌린 것에 안심하고 글자 쓰기 어려워하는 똑순애 옆에서 똑순애가 불러주는 대로 시를 받아 적고 있었다.  급한덕을 힐끔 보니, 뭔가 쓰고 있다. 아무 문제 없이 순조롭게 수업이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똑순애의 시는 거의 완성되었다. 급한덕의 시도 마무리 되었겠다 예상하고 급한덕 종이를 보았다. 

  "한 줄도 안 썼네? 왜 그랬어?" 

  요괴 딸은 의아한 마음에 다그치듯 물었다. 급한덕은 연필을 탁! 내려놓더니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했다.  


  "말이 안 돼. 말이 안 되는 걸 자꾸 쓰라고 해. 이제 안 해." 


  급한덕은 무척 화나 있었다. 같이 써보자고 하니 안 하겠다며 방에서 확 나가버렸다. 급한덕의 돌발행동에 요괴딸과 똑순애는 아무 말하지 못했다. 


 (암전)   


  순탄할 것만 같았던 '시시시작'은 막막함을 제대로 만났다.   


작가의 이전글 조카가 주세요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