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맛과 쓴맛을 좋아한다. 간장에 식초만 넣어 초 간단 초간장을 만들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호박전이나 파전을 깔끔한 초간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달기만 한 바나나나 단감보다는 신맛이 있는 과일이 좋다. 패션후르츠나 덜 익은 키위, 포도도 침을 고이게 한다. 쓴맛은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씀바귀나 고들빼기 김치류를 좋아한다. 밥도둑이다.
끊지 못하는 맛에는 조리를 할 때, 즐거운 마음상태도 들어가는 것 같다. 드립커피가 그렇다. 생두를 볶고, 원두가 되면 그라인더로 갈고, 내려 마시는 일련의 과정들이 즐겁다.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한 과정의 맛 때문에 커피를 못 끊는 것도 같다.
연애도 맛 때문에 시작되었고, 연애가 끝나자 꽤 오래 동안 입맛을 잃었다. 청양고추 풋고추 오이고추가 전부였던 내게 그는 페페론치노로 만든 상하이 파스타를 선보였다. 매콤하면서도 풍미가 좋았다. 와인을 권하기에 잔을 들었는데, 와인은 잔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로 따르는 거라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수저받침대에 포크를 놓으며, 그와의 연애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맛을 계속 볼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간장만 알던 내게 그는 이금기 굴소스를 사용한 볶음요리를 해주었고, 처음엔 굴소스의 꼬릿 한 냄새가 불편했지만 달착지근하고 진득한 맛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요리할 때 풍기는 굴 소스 냄새는 참기 힘들었다.
굴 소스 대신 간장을 넣으면 어때? 그에게 말한다면 그는 실망할 것이 분명했고 내게 요리를 해주기 싫어할 것 같았다. 굴소스 하나로 다른 맛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이 좋아서 그를 만나고 있었다.
왜?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 느낌, 약속시간에 점점 늦는다는 것, 그런 것들은 사실 핑계였다. 나는 그의 편이 되지 않았다. 그가 잘 해내기만을 바랐지 정작, 그가 힘들 때 내 걱정이 우선이었다. 아... 더 이상은 아니겠구나. 만나왔으니까, 만나는 일을 멈추기로 했다.
우습게도 그와 헤어지고 난 후, 수저받침대와 이금기 굴소스를 샀다. 그가 해주던 음식이 그리웠다. 굴소스는 볶음요리를 할 때 한 동안 사용했다. 그럼에도 그가 내는 맛은 나지 않았다. 절반도 쓰지 못하고 버렸다. 수저받침대는 몇 주 사용하다가 거추장스러워져 수납장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수저받침대였는데 검은 고양이 한 마리는 사라졌다.
아... 그가 고양이를 참. 좋아했지. 내가 산 물건에서 불쑥불쑥 그가 튀어나왔다. 관계는 사라졌지만, 그의 취향은 나에게 남아 애매하게 뒤섞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