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했을 때 막내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는데 무슨 일이지 싶었다. 엄마에게 내 입원소식을 들었고 이모는 십 년 전에 나와 같은 증상으로 응급실에 갔다고 했다. 그때 왼쪽 귀 청력은 상실했고 이명이 시작되었다고. 서로 같은 상태를 알고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막내이모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오며가며 인사 정도만 나누는 사이였다가 훅 친구가 된 느낌.
지금은 스트레스를 최대한 받지 않으려고 많은 것을 내려놓았으며 긍정적으로 사고하려 노력한단다. 잠이 오면 바로 자고 잘 먹고 피곤함을 느끼면 쉬는 데 힘을 쏟는다 했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에는 가지 않게 된다고. 한의원도 이곳저곳 다녀보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고 했다.
시시각각 바뀌는 나의 이명과 달리 이모의 이명은 고정된 소리라고 했다. 이모는 나의 이명 상태를 신기해했다. 이명은 고칠 수 없다고 한다. 의사들의 경우에는 증상 완화는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게 과연 치료의 영역에 해당하는지 물음표다. 마침 읽게 된, '몸의 일기'에서 이명에 관한 부분은 섬뜩했다. 이명 환자의 70퍼센트는 정신병원에 간다. 골자는 그랬다. '몸의 일기'는 엄연히 소설이다.
다양한 이명 중 정체 모를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노트북에서 나는 소리와 비슷하다. 그래 이 소리였어. 내가 어지럼증을 최초로 느꼈던 전날에도 나는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버려야 할 노트북을 고집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피로감이 누적되는 일들이 많았다.
이명을 어떤 암시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보려 하지 않았던 것, 듣기 꺼려했던 것들의 총합. 내가 무얼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듯도 했다. 무엇보다 몰두하지 않으면, 이명이 계속 의식되었다. 그림책 '시시시작'을 작업하던 때에는 그 어느 순간보다 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오히려 이명은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몰입의 순간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몸의 신호가 아닐까 생각한다. 좋게 좋게 생각하자면.
나의 약
아침 : 메네스에스정, 카젠정, 록사겐, 스티렌 투엑스, 다이크로짇정(반알), 메치론정 12알
점심 : 메네스에스정, 카젠정
저녁 : 메네스에스정, 카젠정, 록사겐, 스티렌투엑스, 다이크로짇정(반알)
그나저나 다이크로짇정, '짇'이라는 글자가 있나...
하루에 이렇게 많은 약을 털어 넣게 될 줄이야. 약을 받으면, 절망적인 상황을 삼키고 내일의 희망을 꿈꾸었다. 좋아질 거야. 희망을 곱씹게 되는 것이 약 때문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천정이 핑핑 도는. 아니 집 전체. 아니 지구 전체가 뱅뱅 도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지럼증의 시작은 야심 차게 새로운 일을 줄줄이 벌여놓았을 때였다. 세상 밖으로 한 발 내딛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웅크린 몸을 펴는 기지개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지만, 몸과 마음은 지쳐있었다.
엄마 백내장 수술할 병원도 내가 바꾼 터라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수시로 불안했다. 수술실에 들어간 엄마를 기다리는데, 수술 중에 엄마의 눈에서 피가 사방으로 튀는 끔찍한 상상이 이어졌다. 불안이 나를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제대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는 몸과 마음 상태였다. 입맛을 거의 잃었고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돌발성 난청, 메니에르. 병원에서는 두 가지 진단명을 내려주었다. 어지럽고, 난청인 상태로 병원을 왔다 갔다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고, 입원 치료를 결정했다.
스테로이드 메치론정 12알을 아침, 저녁으로 일주일 간 먹는데, 죽을 맛이었다. 정상 청력으로 회복될 거야. 희망을 붙들고 삼키는 약. 약이 목구멍이나 혀에 닿으면 오만상이 찌푸려졌다. 똥에서도 약 내가 났다. 똥이 독했다. 이 똥 냄새는 어디서 많이 맡아본... 아... 엄마 똥. 엄마 똥, 엄마 입에서도 나던 냄새였다.
병원 지하 편의점에서 상어 모양 젤리를 샀다. 있는 것 중에 제일 귀여웠다. 약을 먹은 뒤, 상어 젤리를 하나씩 먹었다. 약 먹는 시간이 덜 괴로웠다. 분홍, 파랑, 노랑 상어 젤리의 색깔을 그때 그때 골라가며 약을 삼키고 젤리를 씹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테로이드는 나를 꿈꾸게 만들었다. 닭살 피부도 부들부들 매끈하게 만들었고, 비염 때문에 아침마다 간질댔던 왼쪽 콧구멍도 말끔해졌다. 몸의 관절까지도 유연해져서 전에 힘들여 겨우 해야 했던 요가 자세들도 쉽게 할 수 있었다.
처음엔 약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저염식의 효과라고 생각했다. 싱겁게 먹으니 몸이 이렇게 가뿐하구나. 한 번씩 저릿저릿하던 몸의 통증도 사라졌다. 퇴원을 하면 본격적으로 요가 수련을 해서 요가 마스터가 되어야겠어! 자신감이 차오르고 어딘가에 으스대는 마음도 생겼다. 멋모르고 들떠 있다가 아... 약... 때문이구나. 아차. 약이 참 무섭구나. 깨달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약 복용 4일째 정상청력을 회복했다. 잘 들려서 기뻤다. 왼쪽 귀와 똑같은 볼륨, 잡음 없이 말끔하고 또렷하게 들리는 게 믿기지 않아서 하루 종일 웃음이 나왔다. 검색해 보니 돌발성 난청의 경우 정상 청력 회복은 30%, 유지 30%, 청력소실 30% 확률이라고 했다. 내가 정상 청력 회복 30% 안에 들다니. 착하게 살 거다. 내가 나를 괴롭히지 않고, 잘해주겠다.
한껏 부풀어 있었는데 청력 회복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퇴원을 앞두고 다시 청력이 떨어졌다. 뭐지. 청력도 날씨처럼 오락가락하는 것인가. 처음 입원할 때 난청 상태로 돌아갔다. 나아진 것 없이 퇴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입원비 정산을 하는데, 입이 썼다.
의사는 스테로이드를 더 복용하는 건 부작용 때문에 불가하다 했다. 일주일이 최대치라며. 스테로이드는 바로 끊는 것도 안 돼서 퇴원 후 메치론 정을 두 알씩 줄여갔다. 메치론 정을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될 때 후련하면서도 알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한 주에 한 번 병원을 가서 청력검사를 하고 약 처방을 받았다. 약 이래 봤자, 이뇨제와 비타민 정도였다. 3주 정도 다니다가 병원에 가지 않았다. 나아지지 않는 청력상태를 확인하고 갈 때마다 청력검사를 계속해야 하는 게 스트레스였다. 마스크를 끼고 좁은 공간에 들어가 삐삐 거리는 소리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게 싫었다. 병원을 더 다니다가는 밀실공포증까지 생길 것만 같았다.
이제는 약을 먹지 않고, 아침에 비타민 1알 정도만 챙겨 먹는다. 그리고 부모님의 성화로 한약 한 포씩 매일 먹기 시작했다. 트레이너 동생이 운동을 가르쳤던 학생이 성장해 한의원 원장이 되었고, 거기서 무려 66만 원 자리 약을 지었다. 한약 먹고 더 어지러워져서 욕이 다 나왔다. 용인에서 첫눈 맞은 날. 눈퉁이 제대로 맞았다.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받아들이자. 약도 한약도 더 이상 찾지 않았고 심지어 친구들마저 찾지 않았다.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피로도가 높았고, 전화 통화는 더더욱 하기 힘들어졌다. 늦가을부터 다음 해 봄까지 뒷동산을 올랐다. 새와 나무, 고라니를 보았다. 놀랍게도 그들이 꺼진 눈빛과 에너지를 되살려내주었다. 생명의 은인들. 약소하지만 산을 오르기 전에 견과류를 챙겨서 금연 표지판 위에 쪼로록 올려다 놓곤 했다. 다음 날 가보면 견과류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기뻤다. 그 순간은 오직 새소리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