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자판기_10

잃어버린 영혼 / 올가 토카르축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by 고라니

공허할 때 곁에 두고 볼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 / 올가 토카르축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출판사

공허 씨, 저는 공유가 나오는 도깨비도 본 적 없는 사람입니다. 공허 씨는 슬픔보다 더 뻔질나게 저를 찾아오지요. 어린 나이. 그러니까 아이일 때부터 곧잘 공허 씨와 만났어요. 그땐, 공허 씨의 이름은 몰랐어요.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혼자 철봉에 매달리고 그네를 타면서 누구라도 오기를 기다렸어요. 놀이터 이쪽저쪽 옮겨가며 행여나 누군가 올까. 두리번대고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어요.


혼자 시간 보내기에는 모래 함정 만들기가 최고죠. 모래를 파서 큼직한 구멍을 만들어요. (이쯤에서 친구가 오면 같이 구멍을 파요.) 구멍 파기가 얼추 끝나면 쓸만한 판지를 구하러 다녀요. (친구가 있다면 같이 구하러 다녀요.) 판지는 구멍보다 커야 해요. 판지를 구멍 위에 올리고 모래를 덮어요. (친구가 있다면) 친구와 함께 함정에 빠질 누군가를 상상하며 키득대요.


만약, 그때까지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칫. 아무나 빠져버려라!' 고약한 마음을 품거나 함정에 빠지기 직전에 "조심해!" 함정으로부터 친구를 구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어요. 상상 속에서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텅 빈 마음을 누군가가 오는 상상으로 채우곤 했습니다.


공허 씨, 허전한 마음에 당신이라도 부르는 건지, 당신이 알아서 저를 찾아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가 기다리는게 당신이 아닌 건 분명해요. ‘잃어버린 영혼'과 공허 씨가 무슨 관계라고 이렇게 들먹여댈까요.


당신은 영혼을 느끼나요? 믿나요?

영혼을 잃어버린 적은요?

영혼은 잃어버려도 되찾을 수 있던가요?

잃어버린 영혼은 어떻게 되찾나요?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은 표지에서부터 어떤 상실감이 밀려와요. 사람들이 많이 빌려 본 건지 책등도 희끗희끗 낡아 있네요. 제목은 음각으로 새겨놓은 글자가 떨어져 나가 비어있는 모양새예요. 초록색 여린 잎새가 자란 화분이 의자에 놓여 있어요. 의자 등받이에 걸려있는 검은 외투. 의자 옆에는 트렁크가 있어요.


'외투와 트렁크 주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


초록 잎새가 뻗어나간 방향을 따라가 봅니다. 주인을 만날 수 있는 이정표처럼요. 뒤표지에는 작은 찻잔과 장갑 한 짝이 그려져 있어요. 주인이 잃어버린 혹은 잊은 사물들. 쓸쓸함이 다가오네요. 잃어버린 사물들을 보면서, 당신도 잃어버린 뭔가를 떠올리고 있을까요.


그림책 내용을 조금 꺼내 볼게요. 일을 아주 많이, 빨리 하는 어떤 사람은 영혼을 어딘가 멀리 두고도 잘 살아가요. 그러던 어느 날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남자는 자기 이름마저도 기억하지 못하죠.


"오전 내내 자기한테 아무런 말도 걸지 않은 남자는 사무치게 외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몸속에 이미 어떤 사람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남자는 연기처럼 뿌옇게 변한 자신을 보게 되고 의사를 찾아갑니다. 의사는 영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약은 없으며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영혼을 기다리라는 처방을 내려줍니다. 남자는 도시 변두리에 작은 집을 구해 의사의 말대로 매일 의자에 앉아 영혼을 기다립니다.


잃어버려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영혼도 그런 것일까요. 처음으로 타인의 영혼을 느꼈던 때가 있어요. 친하게 지냈던 사촌 오빠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꿈에서 사촌 오빠가 서태지의 '우리들만의 추억'을 피아노로 연주를 했는데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어요. 깨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는데... 문득, 오빠 영혼이 이곳을 떠돌다 꿈에 잠시 다녀갔구나 퍼뜩 깨달았어요.


친구 엘은 오빠가 사고로 죽은 뒤, 엄마를 따라 집안까지 들어온 새 '황조롱이'를 오빠의 영혼이라고 믿었어요. 그렇게 날려 보내려고 해도 떠나지 않았던 황조롱이가 어느 날 갑자기 미련 없이 가더래요. 황조롱이를 오빠와 동일시하던 엘의 눈빛이 잊히지 않았어요. 새의 모습으로 잠시나마 오빠가 와서 행복했다고 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울림이 짙고 깊어지는 이야기예요.


살다가 '잃어버린 영혼'이 생각날 때가 있어요. 감당하기 힘들 만큼 공허함이 클 때요. 그림책 속 문장 '몸속에 이미 어떤 사람도 없는 느낌'과 비슷해요. 이대로 살 수는 없을 것 같고 막막할 때 이 그림책을 옆에 두어요. 바로 펼치지는 못해요. 시간이 걸리죠.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조급하게 무언가 하려고 작정하면 꼭 탈이 나요. 아프거나, 다치죠.


얀_'잃어버린 영혼' 주인공 이름_은 좋은 의사를 만났어요.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마련하고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리죠. 얀의 수염과 머리는 자라서 덥수룩해져요. 드디어 어느 오후 얀은 숨을 헐떡이며 찾아온 영혼을 만나게 됩니다. 영혼을 위해 의자를 내어주고 마주 봅니다. 얀과 영혼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봅니다.


얀이 영혼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믿고 싶어요. 잃어버린 영혼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혼자 기다리기 힘들 때, 이 그림책을 옆에 놓아보기를 추천해요.


공허 씨, 불쑥 당신이 온대도 괜찮아요. 저는 얀의 미소로 당신을 마주 볼게요. 영혼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 때, 당신의 안부부터 챙겨 물을게요. 당신은 저에게 영혼은 잠시 잊은 거라고 알려주는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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