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샬뮈 Oct 21. 2017

무거운 고백

2015년 7월, 처음으로 남편과 내게 찾아왔던 아이를 잃었다. 정기검진 때 계류유산인걸 알았고, 수술 날짜까지 잡았었는데 내원 이후 하혈이 심해져서 결국 수술 없이 약 복용으로 큰 일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4월, 두 번째로 유산을 했다. 심장이 뛰는걸 보지 못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덤덤하게 생각했다. 달이 차고 오르듯 힘든 시간에서도 사소한 웃음과 따듯한 위로가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슬픔과 눈물이 조금씩 흐릿해져 간다. 아이가 살아있었으면 지금쯤 옆에서 자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지만, 살면서 억지 부리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 중에 하나로 슬픔도, 미안함도, 후회도 묵묵하게 감내한다. 뱃속에 아가를 잃은 슬픔이 이 정도인데 키운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더 가늠할 수 없이 아프고 괴로운 것일까... 세월호의 아이들을, 부모님들을 살아있는 동안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가 더 늘었다.


아이를 잃고, 몸을 서서히 회복해나갔지만 마음은 이전에 겪어왔던 어떤 일과도 비교될 수 없이 무뎌지고 무너지는  일들이 많았다. J의 사소한 무신경과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배려 없는 행동들도  몇 곱절의 상처가 되곤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임신과 유산의 과정에서 J를 많이 힘들게 만들기도 했었고, 그 순간순간을 모나지 않게 잘 견뎌주던 J도 결국 점점 폭발했다. 그럴 수 있는 일이었고, 그래야만 했던 일이다. 몇 번의 큰 싸움을 하고, 답답함과 먹먹함이 있었다. 다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게 속상할 때가 있다. 싸움부터 화해까지 기대 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당연하게도 J와 나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근래에 싸움은 금연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들켜서 시작되었는데, 이 일로 인해 남자와 여자의 차이 혹은 J와 나의 차이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생각 끝에서야  포기할 것, 들추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또 무뎌져야 할 것이 겨우 명확해졌다.


몸은 마음에 얼마만큼이나 반응하는 걸까, 내뱉지 못하는 마음도 고스란히 몸에 새겨질까?  모든 일에 이유가 있는 거라면, 그 의미를 언제쯤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걸까. 불행의 단면도 행운의 단면도 합쳐서 봐야 삶의 완전한 모양이 된다. 하지만 그 모양을 빚는 일 조차 놓아버리고 싶은 그런 날들도 있다.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 듀프 레인이 레드에게 남긴 편지에 적힌 말처럼, 희망은 좋은 것이고 좋은 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희망이 지겹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사실은 지겹다는 표현보다 괴롭다는 말이 정확했던 것 같다. 몸에서 많은 것들이 빠져나갔다. 비어있음 조차 완전하게 받아들일 수 없어서 쓸데없는 게임 레벨에 시간을 허비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시간은 잊을만하면, 아니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불쑥 찾아오곤 한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책이, 그동안 마음을 주지 못한 이야기들이 절실하다. 어떤 것도 부러워하지 않고, 그래서 어떤 것도 어쩔 수 없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도 허튼 말없이 눈빛으로만 행동으로만 지금을 채워갔으면 좋겠다. 결국은 몸이 겪는 일은 나눌 수 없다. 마음이 몸을 거슬러 갈 수 없어도, 그 자리에 멈춰서 같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간절히 바랐다. 되돌아보면 몸은 경험을 뚫고 지나가도 마음은 그렇게 빨리 사라지지 못하니 항상 앞서서 무너지는 건 마음이었던 건가. 아무튼 몸과 마음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닮았다.  


2016/11/06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운 옥희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