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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포 Mar 19. 2023

길에서 길을 묻다.

즐거운 직장인(#1)

WAI Questions.

내가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다.


Who Am I?

Where Am I?

What Am I doing?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는가?


주로 기분이 센티멘탈할 때에 하는 질문이지만

이 질문들은 너무 현재에 딱 달라붙어 있어서 숨이 막힐 때,

나를 공중에 둥둥 띄워서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게 해 준다.


Magic key와 같은 이 질문들은, 나를 초연하게 해준다.

참고로 내가 아는 ‘초연’이란,

기쁠 때 기뻐할 줄 알고, 슬플 때 슬퍼할 줄 알되,

흔들리되 꺾이지 않는 것이다.  



눈감고 길걷기.

내가 약 25년 전, 어린 시절부터 간혹 하는 나의 취미생활이다.


눈감고 길을 걸으면, 불안함이 엄습한다.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이 불안하다.

때론 부딪치고, 때론 넘어진다.


눈감고 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한다.

‘인생은 눈감고 길을 걷는 것과 같다’라고.


눈감고 길을 걸으면서,

길을 잃지 않고, 넘어지지도 않으며, 오래 걸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눈을 뜨고 있는 친구와 손을 잡고 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가끔씩 눈을 떠서 방향을 재점검하고, 다시 눈을 감고 걷는 것이다.


가끔 눈을 떴다가 걷는 것이 무슨 ‘눈감고 길걷기’이냐고 묻는 내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었지.

“눈 뜨고 길을 걷는 너도 가끔 눈을 깜빡거리는 건 마찬가지잖아!”


눈을 뜨고 살아가는 사람도 가끔은 눈을 감고 멈추어 서야 한다.

눈을 감고 살아가는 사람도 가끔은 눈을 뜨고 멈추어 서야 한다.


나는 이것을 ‘pause’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마치 영화를 보다가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음악을 듣다가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나에게는,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pause’의 순간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WAI Question을 던지고, 눈감고 길걷기를 하는 나는, 정작 구체적인 인생계획을 세우지 못했었다.


긴 학업의 시간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너의 꿈은 뭐니? 우리가 자라면서 무수히 듣는 질문이다. 20년간 들어왔으나, 나는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하였다. 너의 꿈이 뭐니? 라는 질문에 갓 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부모 혹은 선생님의 생각에 영향을 받아서 의사, 과학자, 심지어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적어내곤 한다. 학창 시절 나의 꿈은 너무 모호하고, 나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너는 커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니?‘라고 질문의 범위를 좁혔었더라면, 그리고 어떠한 직업들이 있는지를 알게 되는 기회가 더 많았더라면, 나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까?


‘장래 희망(직업)’에 비하여, 꿈은 조금은 더 모호한 표현이고, 소명/비전은 조금은 거창한 표현이다. 소명/비전이라는 개념은 나의 존재 이유와도 결부가 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거창하고 모호해진다. 큰 꿈을 꾸는 것은 좋으나, 현실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위대한 인물들은 어려서부터 큰 꿈을 꾸었겠지만,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어릴 적 꿈과 무관한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실패감, 상실감과 회의감을 느낀다.


물론 나는 가끔 ‘나는 이 일을 위해 태어났다. 나의 과거는 오늘의 나를 만들기 위한 연결이며, 어제는 오늘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나는 지금 이 일을 위해 존재한다.’라는 자기최면을 걸고는 한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때로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도 있다. 소명을 이루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은, 자아실현이라는 인간욕망의 가장 높은 단계를 성취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의 시대에 살고 있고, 선택의 자유가 있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 우리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무언가’는 항상 우리의 현재보다 나은 상태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안 좋은 상태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희망은 좋은 것이다. 희망은 사람을 발전하게 한다. 그러나 희망은 실망이라는 반작용으로 상처를 주기도 하며, 허황된 희망은 너무 멀리 있어서 오히려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학창 시절의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그리고 무엇하는 것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발견하기보다는, 너무 멀리 있는 꿈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꿈은 좋은 것이다. 꿈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비행기에 타서 창공을 바라보고, 땅 위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듯이, 넓은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해 준다.

그러나 공중에만 떠 있을 수는 없다.


파리의 개선문에 위에 올라가면 아래로 12차선의 도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개선문 위에서 내려다보는 샹젤리제 거리는 장관이다. 특히 저녁이 되어 석양이 비치고, 하나둘씩 주황색 불빛이 켜지다가, 마침내 어둠이 내리면, 12차선의 길들이 눈앞에 밝게 펼쳐진다.


파리를 방문한다면 저녁시간에 개선문 위에 꼭 올라가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전경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되면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도로를 선택하여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파리의 개선문과 갈림길(출처: 구글 이미지)

방향을 잃지 않고 멀리 가려면, 눈을 뜨고 걷더라도 가끔 눈을 감아야 하며, 눈을 감고 걷더라도 가끔 눈을 떠야 한다.

학창 시절의 나처럼 꿈만 꾸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꿈 없이 살아서도 안 되겠지만.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오늘은 어제의 꿈과 같나요? 당신은 꿈 없이 걷고만 있나요? 아니면 꿈만 꾸며 멈추어 있나요?


인생은 눈감고 길걷기 이다. 오늘도 나는 길을 걸으며 길을 묻는다.


# 다음화 “말타고 말찾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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