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직장인(#4)
술은 액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술은 액체다.
업무는 고체다.
정육면체 큐빅들이 맞부딪친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액체인 술은 고체들인 업무들을 각각 조금씩 녹이며, 서로 융화시킨다.
술은 꽂꽂한 사람을 유들유들하게 한다.
마음을 꼭꼭 걸어 잠근 사람의 긴장감을 풀어준다.
예의를 차리느라, 그리고 위계서열 사회 속에서 눈치 보며 굳어있는 한국인들의 뻗뻗함을 느슨하게 해 준다.
때로는 정신이 너무 멀쩡하지 않은 채로, 무장해제를 한 상태에서 사람들의 마음의 거리를 좁혀준다.
나는 회사에 입사 전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대학교에서 선배들이 따라주는 술도,
군대에서 대대장이 따라주는 술도 모두 거절했었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던 이유는 직접적인 두 가지, 그리고 이 두 가지에서 비롯된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로는 아빠의 영향이다.
아빠는 술을 너무 좋아하셨고, 내가 어린 시절에 술 마시고 집에서 실수를 많이 하셨다. 엄마, 누나와 손잡고 밖에서 술 마시는 아빠를 찾아서 술자리에 갔었던 기억들은 아직도 남아있다. 아빠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나는 술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었다.
두 번째로는 종교적인 이유였다. 엄마의 영향으로 교회 공동체에서 성장하고, 신앙을 가지게 되면서, 당연히 술은 마시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자라왔었고, 주변의 교회 친구들, 대학의 동아리 친구들 모두 술을 마시지 않았었다.
세 번째로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의 영향으로, 나는 술에 대해서 과도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살아왔다.
‘세상의 모든 술병을 깨버리고 싶다.’
‘저렇게 술이나 마시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생이 되었나?’
혈기왕성한 20대에 내가 했었던 생각들이다.
뉴스에서는 술로 인한 사건사고가 연일 잇따라 방영되었고, 하굣길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서 취객들의 꼴사나운 모습들은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당시의 나는 대한민국은 술 취했다.’라는 생각을 하였었다.
그랬던 내가 회사에 입사하여 술을 마시게 되었다.
입사 전부터 회사에 가면, 대한민국에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술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내가 입사해서 배치된 팀은 ‘월화수목금‘ 중 4일 가량을 자정 가까이 술자리를 갖던 팀이었다.
술을 먹기로 마음먹고, 술을 마시게 되면서, 술을 마시는 명분이 필요했고, 나는 ‘술은 액체다. 업무는 고체다. 술은 업무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관계들을 융화시킨다.’라는 권주가를 만들게 되었다.
술과 운전은 비슷하다
자만하면 사고가 난다.
운전도 초보딱지를 벗고,
이제 운전 좀 하나보다 하면,
그 순간 사고가 난다.
술도 ‘나는 주량 문제없어’ 하고
자만하면 사고가 난다.
술로 인한 사고는
술이 취해서 발생하는 사고들(폭행, 추행, 음주운전 사고, 가정불화 등)과 술로 인해 건강이 망가지는 것이다.
성경구절을 몇 개 인용하자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함은 넘어짐의 앞잡이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항상 겸손하자.
술은 인생이라는 고기의 양념 정도로만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