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想
길을 걷다가 뒤돌아 서서 지나온 길들을 보듯이,
오래된 수첩들을 열어 과거의 생각을 돌아보고,
현재의 생각을 조금 보태어 본다.
두 가지 스토리
# 1
2011.6.18 일기 중 발췌 & 보탬(2023.8.6)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난 참 꿈 많던 소년, 청년이었는데,
십 년 전 소년이 머물렀던 자리들을 지나면서,
문득 다시 생각한다.
십 년 전의 소년이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과연 뭐라고 말할까?
지금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그리고 훗날, 미래의 나는 또 현재의 나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살면 살수록 인생은 너무 복잡하고, 버거우며
살면 살수록 나는 너무 무기력해져 버려,
열정도 의지도 통제력도 잃어버리고
비상하는 삶이 아닌, 생존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높이 비상하고 싶은데… 점점 날개에 힘이 빠지고,
날개의 깃털이 뽑혀서 추락하려는 듯한 새의 모습을 떠올린다.
꿈, 비전, 소명이라는 에너지원을 잃어버리고,
욕심, 돈, 물질이라는 동력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날카로우며, 냉철하며, 단정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머리는 청명하지 않고,
마치 어지러운 책상과 옷장처럼 마음은 혼탁하다.
또다시 난, 자기 불만족과 생에 대한 회의와 함께
먼지 나게 뒹굴며 무디어지고 있다.
무디어져야 할 부분이 있고, 날카로움을 간직하며 단련시켜야 할 부분이 있다.
실망감, 회의, 무기력에 눌려서 납작하게 바닥에 엎드러져 있다.
과거의 일기장을 보며, 나의 마음을 뜨겁게 했던,
그리고 지금은 잃어버린 단어들을 본다.
어쩌면 무지(无知)에서 오는 용감함, 무모함이었을까?
아니면, 지금이 잘못된 앎들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던 포부를 마음에 품었던 아이는,
세상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자
머리 아프게 고민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졸업한 학교를 걸으며,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옛날의 나를 만나고 싶어서 이곳에 온 거구나.
# 2
2011.7.6 일기 중 발췌 & 보탬(2023.8.6)
아침 출근길, 문득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들었는데, 전철 유리창 밖으로 하늘이 알 수 없는 빛깔을 띄고 있었다.
전철, 지네 같은 전철 속에 실려 옮기어져서, 네모난 건물 속 어느 허공 위에 떠서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인간들의 삶은,
맑은 하늘 아래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논밭에 앉아 허리를 구부린 채 일하다가, 흐르는 땀방울이 시원한 바람에 서늘하게 변하며 뺨을 간지럽혀, 고개를 들고 한 손으로 땀을 닦으면서, 푸른 하늘과 찬란한 햇살을 바라보던 인간들의 삶보다, 과연, 낫다고 할 수 있을까?
화면과 붙어사는 삶을 소재로,
모니터 화면 속으로, 그리고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서서히 얼굴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는
괴기 영화의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모니터 세대, 스크린 세대,
화면 앞에서 하루 온종일을 보내는 세대,
스크린 화면 속으로 머리가 빨려 들어간 세대.
요즘 세대는 그런 세대다.
정신이 가장 또렷한 순간, 공기의 무게를 느낀다.
그동안의 나는 반쯤 잠든 채 살아왔던 것 같다.
지금은 온전히 깬 듯.
온전히 깬 모습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