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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화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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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포 Sep 22. 2023

이해

理解


이해는 노력과 양보를 동반하는 행위이다.


단기적 관점에서 노력과 양보라는 투자는

ROI(투자수익률)가 매우 낮은 행위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해라는 행위를 포기한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되네’라는 말과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 이해를 투자하지 않은 손실은,

내가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주변에 사람들이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주변에 이해하고 믿을 만한 극소수의 사람만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러한 손실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라는 투자로 인해 얻게 된 인연이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왔을지는 알 수 없으며

생각보다 큰 기회를 놓친 것 일 수도 있다.


이해는 어렵다.

시작은 이해하려는 마음부터 이다.

‘이해가 안되네’가 아니라 ‘무슨 사정이지?’

막힌 결론이 아닌 열린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해는 어렵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겉모습이 아니라,

빙산 밑의 비가시적인 영역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이는 상대방 혹은 주변인으로부터 ‘사정’을 들으며

수면아래의 문제를 탐색함으로써 일부 파악 가능하다.


이해는 어렵다.

객관적인 사정을 들었다고 타인을 이해할 수는 없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인식, 감정, 행동은 다르다.

이해를 더 깊게 하려면,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그 사람의 살아온 역사를 공부하는 일이다.


이해는 어렵다.

그 사람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같은 배에서 나온 쌍둥이라도 다르게 자라듯이

모든 사람은 생물학적인 차이를 가진다.


이처럼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일은

매우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이해의 요구 수준을 낮추어서

표면적인 수준(사정)에서의 이해라면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이해는 한계가 있다.

머지않아 또다시,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해는 노력과 양보를 동반하는 행위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양보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성인군자와 같은 태도의 글이지만,

실제로는 나의 마인드컨트롤을 위한 글이었다.

다음은 속마음을 토로하는 글이다.)




너무나 쉽게 타인의 이해를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타인의 이해심을 역으로 악용하는 사람들.

본인의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미치는 걸 알면서도,

나는 어쩔 수가 없었으니 이해해 달라라고

입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쉽게 표현하는 사람들.


자신의 상황을 늘어놓으며 이해를 구하지만,

그 속마음을 알기에 오히려 더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대개는 자신은 쉽게 excuse가 되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도 많다.


이해심을 악용하는 사람들을 몇 번 만나다 보면,

다시는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노력과 양보를 하고 싶지 않아 진다.


주식 투자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보고서는

‘다시는 주식 투자 안 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포기하고,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네! “로 마감을 할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한 친구로 인해 이해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봐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오늘 친구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다.

이렇게 나는 친구 한 명을 잃어가고 있다.


이해는 노력과 양보를 동반하는 행위이다.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번 실패로 이해 자체를 포기하진 않는다.

다음번에도 나는 이해를 시도할 것이다.


이해는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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