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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포 Apr 16. 2023

보고 스타일 : 문서형, 구두형

즐거운 직장인(#7)

문서형 인간 파포, 하이브리드형이 되기로 결심하다.


나는 생각을 깊게 하는 편이지 빠르게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신중히 고민하여 생각을 담은 “문서형 보고”를 좋아한다.


 직장인에게 보고서는 작품이다. 도자기를 굽는 장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도자기를 수없이 깨부수고, 자신의 마음에 맞는 걸작품 하나를 만들어 내듯이, 보고서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그리고 나를 대변하는 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글을 쓰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대학 입시를 위한 논술시험에서 주어진 시간 내에 논술 답안지를 절반밖에 채우지 못하여 초조하고 다급했던 그 순간, 그 장면은 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page 중 하나이다.


답안지를 거둘 때까지 다급하게 펜대를 굴리던 나의 모습, 나의 답안지 없이 퇴장하던 시험감독관의 차가운 모습, 급하게 문을 뛰쳐나가 반밖에 채워지지 않은 나의 답안지를 받아달라고 감독관에게 사정하던 나의 절박한 모습… 이 장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낙방했다. 감독관이 나의 답안지를 받아주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논술 답안지를 절반 밖에 채우지 못하여서였는지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논술시험으로 인한 낙방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나보다 수능점수가 낮았던 내 친구는 합격하였기 때문에…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의 논술 주제가 피에르 쌍소의 저서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의 발췌문을 읽고 그에 대한 나의 입장을 쓰는 것이었다. 결국 당시 논술 시험이 나에게 준 결론은,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느리게 사는 것 = 실패‘라는 교훈이었다.




나는 직관적인 사람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며, 때때로 번뜩이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기계처럼 주어진 시간 내에 답을 뽑아내지는 못한다.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처럼, 중요한 영감은 순간적으로 오며, 그리고 그 영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어디를 가든 항상 노트와 펜을 가지고 다닌다. 물론 영감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문제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곱씹고 생각하기에 어느 순간 영감이 온다고 볼 수도 있다.


대학 입시 논술시험에서 낙방한 내가 대학(합격한 다른 대학)에 입학하여 보니, 문과생에게 있어 테스트(중간, 기말)는 대부분 주어진 시간 내에 나의 논점과 근거를 쓰는 논술시험이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며, 다소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갑자기 마주한 질문에 대해 주어진 시간 내에 논리 정연하게 글을 쓰는 것이 매우 어려운 사람이었다.


대입을 위해 달려온 나는 해방감과 함께 조금 쉬고 싶은 마음도 많았고,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다.’라는 생각으로 초대받지 않은 여러 장소에 스스로 찾아가 다양한 경험을 쌓느라 바쁘기도 했었다. 그래도 시험 직전에는 벼락치기라도 하여, 시험을 어느 정도는 볼 줄 알았는데, 여전히 제한된 시간 내에 작성하는 논술시험은 나에게 난관이었고, 대학 1학년은 2점대의 낮은 학점으로 마무리해야 했다.


그런 내가 대학 2학년부터는 4학기 연속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는 우등생이 되었다. 나의 비결은? 시험 전에 예상 논술문제를 스스로 List-up 한 이후, 모든 예상문제에 대한 답변논술을 미리,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작성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대로 외웠다.


나는 글을 쓰면서 외우는데 다소 소질이 있었다. 그래서 시험장에 들어가서 내가 예상했던 논술문제, 혹은 예상문제와 유사한 문제가 나오면, 미리 오랜 시간을 들여 작성한 나의 모범답안을 거의 유사하게 작성하고 나올 수 있었다.




직장인이 되어보니, 주니어 시절에는 말보다는 글이 중요했다. 그 이유는 나는 선배들의 보고를 돕는 역할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은 나의 말보다는 나의 글, 나의 자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보고서를 작성하여 팀장에게 보고하여도, ‘문서형’이었던 나의 팀장님은 나의 말보다 나의 보고서를 더 중요시 여기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윗사람의 성향보다는 나의 위치였다. 나의 팀장님은 내 보고서의 최종 엔드유저가 아니었고, 팀장님 또한 나의 보고서를 들고, 본인의 언어로 나의 차상위자에게 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만든 보고서와 내가 보고 드렸던 말들은 모두 팀장님께 input 되었다. 그러나 차상위자에게 보고 시에, 내가 작성한 보고서는 100%(정직하게) 차상위자에게 전달되는 반면, 내가 전달한 말은 나의 팀장에 의해 소화되고, 본인의 언어로 재구성되어 차상위자에게 보고된다.


중간보고자(보고를 받고 또 보고를 하는 사람) 중에도 문서형과 대화형, 그리고 하이브리드 형이 있다. 대화형 상사는 보고를 받을 때, 보고서를 많이 보지 않는다. 대신 스토리텔링 식으로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 문서형 부하직원은 본인이 정성을 들여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서, 상사도 함께 보고서를 봐주기를 원하지만, 대화형 상사는 보고서가 아닌 보고자의 눈과 입을 쳐다본다. 보고서가 아닌 나의 눈을 보고 대화하기를 원하며, 대화를 통해 정보들을 그의 머릿속에 입력한다.


반면 문서형 상사에게 보고서를 주었을 때는, 그들에게 우선 읽을 시간을 주어야 한다. 보고서를 받는 순간 그들은 보고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몰두하고 있으며, 눈과 머리로 보고서를 해부하고 있는 그들에게 부하직원의 구두 보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부하직원의 말들은 때때로 보고서를 읽는 데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문서형 리더에게는 보고서를 읽을 시간을 주며, 대화는 리더가 보고서를 잘 읽을 수 있도록 가이드해 주는 보조 수단으로, 그리고 보고서를 읽다가 막혀서 질문을 할 때 보조 답변을 하는 수준으로만 해야 한다.




물론 직장에도 납기라는 것이 있고, 대부분의 상사는 빠르게 답변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직장에서 내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은 논술시험의 제한 시간보다는 유연하다. 정 안되며, 머리보다는 엉덩이로 승부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이 빠르지 않고 생각이 많았던 직장 초년의 나는 야간근로, 주말근로가 많았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니어를 벗어나 중간관리자가 되다 보니, 엔드유저 혹은 엔드유저에 가까운 상사에게 보고할 일이 많아지며, 문서형 보고 보다는 대화형 보고를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왜냐하면 때때로 엔드유저에게 문서로된 보고서는 필요가 없다. 앤드유저에게는 본인이 문서를 가지고 보고할 상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본인이 보고 받고, 결정하면 되기 때문에, 그리고 엔드유저에게는 너무나 많은 정보가 모이기 때문에, 너무 많은 페이퍼와 빼곡한 글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생각을 깊게 하는 편이지, 빠르게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를 통해 순간적으로 반응하며 대처하는 것은 나의 장점이 아니다. 사회 초년생에는 “보고서”라는 나의 작품을 리더들에게 전달하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짧은 시간에 Q&A 형식으로 상사에게 구두형 보고를 드릴 일이 더 많아진다. 특히 3why(왜? 왜? 왜?)로 이어지는 상사의 파고드는 질문에는 진땀이 나고, 답변이 궁색해지는 일이 많다. 이러한 난관에 봉착한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주어진 시간 내에 글쓰기를 어려워하던 내가, 대학에서 주어진 시간 내에 답안지가 채워져야만 하는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던 것은, 사전예상 문제를 모두 리스트업 하여 예상 답변을 모두 미리 적어보는 것이었다.     

생각이 빠르지 않은 내가, 구두형 상사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이전 경험과 유사한 방법이었다. 예상 질문을 리스트업 하여 보는 것, 그리고 미리 답변하여 보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지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다만, 문제는 논점이 명확하며, 많은 정보를 ‘보조’ 혹은 ‘참고’로 첨부할 수 있는 문서형 보고에 비해 구두형 보고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더 많은 예상문제와 더 많은 정보암기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더 어려운 것 같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그의 직무와 상관없이 “영업사원”과 같은 입장이다. 자신의 생각(아이디어)을 포장해서 타인에게 잘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제안서와 브리핑,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앞에 있는 상대방을 설득해야만 한다.


내가 경험한 성공한(?) 리더들, 동기들보다 높은 자리에 빨리 앉은 리더들은 모두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는 본인들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철저한 문서형으로 완벽한 보고서를 가지고 승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빠른 상황판단력과 임기응변으로 승부를 보는 사람들도 있다. 상사의 Q&A에서 닦이지 않도록 부하직원을 시켜서 수많은 색인이 달린 답변부록을 책자 형식으로 만드는 분들도 있다.


물론 형식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형식이라는 관문에서 통과를 하지 못하면 내용까지 다다르지 못할 수도 있으며, 맛있는 음식도  멋진 접시에 담을 때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법이다. 보고에 있어서, 이러한 형식은 ‘Template’로 볼 수 있다.


토플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해 본 사람은 ‘템플’”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스피킹, 라이팅 모두 템플릿이 있다. 강남의 토플학원에서는 템플릿을 가르친다. 어떠한 문제가 나오든, 암기한 템플릿으로 시작하며, 중간 연결과 마무리까지 하면, 답변의 절반 가까운 부분이 템플릿으로 채워진다.


 보고의 고수들을 보면 템플릿이 잘 완성되어 있으며, 상황에 따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적합한 템플릿을 빨리 가져와서, 신속하게 보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보고받는 사람에 따라 템플릿을 변경하여 사용하는 그들은 하이레벨이다. 토플학원에서와 같이 직장생활에서의 템플릿을 가르치는 학원이 있을까? 나는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하였다. 그러한 학원이 필요한 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평소 보고를 잘하는 선배의 보고 속에서 반복되는 템플릿을 찾아볼 것을 권장한다. 그리고 템플릿을 암기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보자. 처음에는 힘들 것이나, 점차로 익숙해질 것이다. 다만 템플릿에 갇혀서 너무 굳어지지는 말자. 점점 더 많은 템플릿 아이템을 보유하며, 피 보고자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하이레벨로 올라가야 한다.


 직장인 15년 차인 나는 이제 문서형 보고를 하기만 하던 시절을 지나, 부하직원에게 보고를 받고, 상사에게 문서와 구두로 보고를 하는 중간자적인 위치가 되었다. 나는 어떤 형인가? 문서형? 구두형? 나는 하이브리드형이 되기로 결심한다.



 대한민국의 직장인의 일인으로, 함께 직장생활의 애환과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대한민국 직장인 파이팅, 우리 모두 즐거운 직장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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