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자락 너머

아득한 날들에는...

by 이봄


삭풍 물러난 자리마다 꽃이 폈다.

꽃다지 한 움큼 터를 잡고 노랗고 작은 꽃

점점이 뿌렸다.

알싸한 바람으로 달래가 돋고,

미쳐 꽃대 하나쯤 키우기도 전에

냉이는 뚝배기 오목한 터에 자리를 잡았다.

풋내 가득 봄날이 열리고

둘러앉은 입들마다 숟가락 야무지게

치켜들고 침을 흘렸다.

향기롭고 싱그런 밥상이다.

들이나 산에서 앞다퉈 봄이 다툴 때

달그락 달그락 식탁에서도

봄은 노는 법이 없다.

겨울이 물러난 그 끝에는 봄이 피었다.

어깨며 오금마다 뻐근하게 겨울이 머물렀듯

사근사근 토닥토닥

손끝 야무진 안마사처럼 북풍은 녹아내렸고,

게슴치레 감기는 눈꺼풀로 봄이 왔다.

.

.

.

.

계절을 보내고 계절을 맞는 방법은 그랬다.

견디고 이겨내거나, 눈빛 얌전하게 허리를

숙이면 어김없이 한 계절은 지나가고

그 너머에는

또 다른 이름으로 변한 계절이 기다렸다.

끝의 끝에는 시작이란 이름으로

우화한 끝이 있었다.

사람의 날들에도 그런 순환이 있을까?

희망의 끝 그 너머에도

계절의 순환처럼 변이한 희망이 있으려는지,

번데기 꿈꾸는 봄날의 우화가 있을까 모르겠다.

날개마다 핏줄마다 피가 거칠게 돌고,

퍼지는 햇살따라 지치지 않을 나비 한마리

창공을 날까 궁금하다.

꿈이라거나 희망이라고 하는 것들 너머엔

마중하는 걸음들 분주할까.

쓸데 없을 기대라면 바람으로 흩어져라.

여물지 못할 꿈이어도 그렇다.

단단하고 촘촘하게 여물 일 아니라면

한낮 모였다 흩어질 안개가 좋겠다.

있는 듯 모였다가 헛되지 않을 순간에

본디 없었다는 듯 흩어지면 그만이다.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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