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폭염 서릿발을 세우고

뽀드득 뽀드득 그리움으로 부서졌다

by 이봄

울다지친 매미가 개울가에 앉아

자맥질을 했다.

능수버들은 늘어져 머리를 감고,

갈대무리는 어깨를 걸고

버들치며 돌고기를 몰았다.

좁고 빠른 물살 끝에는 아가리 험하게

벌린 통발 하나 숨겨두었다.

재잘거리던 아이들은 숨을 멈추고서

물첨벙 몰려가는 고기를 바라보았다.

비늘 번쩍이며 떼로 달아나던 날피리와

얼룩덜룩 줄무늬가 곱던 종개 몇 마리 수염을

쓰다듬다가 통발의 아가리 속으로 떠밀렸다.

촘촘이 늘어선 갈대와 까만 눈만 껌벅거리던

아이들은 철렵으로 해가 저물었다.

"아, 고녀석들 어디서 요렇게 물고기를

잡았다니?" 헤벌쭉 입꼬리 찢어진

중늙으니 몇몇 너른 평상에 앉아

한껏 거들먹 거릴 때

8월의 햇살은 아양 떨어 여전히 뜨거웠다.

하릴 없는 원두막은 빈 밭 위에서

까박이며 졸기 일쑤였다.

머리통 만한 줄무늬 수박은 염천의 햇살

이기지 못해 쩌억 갈라터진 틈바구니로

속살을 내보였다.

발그레 붉힌 부끄러움 곱기만 한데

원두막에 널부러진 박 씨 아저씨 종일

자다 깨다 세월을 밀쳐내었다.

뒤란의 엄나무 몇 그루

이른 낙엽으로 몸살을 앓았다.

불어가는 바람에 버석거려 앓다가

푸른 가시 날을 세워 심통을 부렸다.

불어가던 바람 몇 조각 거미줄의 나방처럼

푸른 가시에 꽂혀 발버둥쳤다.

발버둥치는 몸뚱이마다 푸른 피 몇 방울

땀방울로 쏟아냈다.

아, 미친 여름이 짐짓

'아니야, 난 미치지 않았어!' 온몸으로

항변을 하고, 듣는 사람들 울화통에

군불을 지폈다. 타닥타닥 아궁이

구시렁구시렁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산마루 곱게 걸린 초생달에 마음을 빼앗겼다.

"좋구나, 두둥실 그대 어여뻐 좋구나!"

.

.


.

.

뽀드득 뽀드득 부서지는 소리가 좋아서

달빛 속을 서성였다.

마당 가득 서릿발 손가락만큼 자라고

모래알 머리에 이고 선 녀석들 바라보다가

그리움 하나 그리움 둘, 셋...

손가락 접어 헤아리다가 서릿발을 밟았다.

뽀드득 뽀득 밟혀 부서지는 소리가

염천의 햇살 뒷걸음질 치게 만들고

나는 물러난 녀석 바라보면서

씨익 웃고야 말았다.

서너 걸음 밀려난 여름, 멀뚱멀뚱 앉아서

'아, 뭐야? 이런 황당할 때가...'

어이없어 당황스러웠다.

종일 그대 바라보다가 마침내 돌아선

발걸음에 '보고 싶어!' 매달리는 그리움은

8월의 마당에 솟은 서릿발이었다.

"이만큼이나 보았는 걸,

이쯤이면 되었어!" 다독이다가

결국 또 맞닥드리고야 마는 그리움.

햇살 쪽빛으로 퍼질 때

함박눈 펑펑 내린다고 해도 나는 좋았다.

당연하다는 것들 거리를 활보할 때

뒷골목 어디쯤에서는 황당한 것 하나쯤

고개를 쳐들어도 좋겠다 싶었다.

보라빛 수수하게 소국이 피고,

감나무 푸른 가지마다 소복히 눈이 쌓였다.

8월의 눈사람 자그맣게 만들고서

나는 또 눈밭 가로질러 고백의 말을 썼다.

"당신 사랑해! 당신이 참 좋아!"

어쩐지 소국을 닮았다 생각이 들었어.

신문지 둘둘 말아 소국을 들고

자전거 씽씽 내달리는 8월이면 또 어떻겠어?

여름보다 더 뜨겁던 나와

꽃보다 더 예쁘고 향기롭던 너도

결국은 여름날의 서릿발처럼 엉뚱한

몸짓이었는지도 몰라.

감나무 푸른 잎에 하얗게 쌓인

철을 잊은 눈인지도 모르겠다.

계절을 잊고 나이를 잊은 사랑이 뽀드득 폈다.

소리도 곱게 뽀드득 뽀득

아, 사랑은 그랬다.

계절을 넘나들고 공간을 뛰어넘었다.

은경아, 사랑해♡

고백의 말 한 마디에 온몸의 세포 되살아나

귀를 세우고 감각을 깨워 네게로

달려갔다.

마치 폭풍으로 달려가는 마음이었다.

뽀드득 뽀득 소리도 고운 사랑,

8월의 사랑은 그렇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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