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머물렀나 봅니다.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메밀꽃도 달이 이지러지면 떠나야 하듯 등짐을 챙겨야 할 시간입니다. 반기는 사람은 없어도 갈 곳은 있는 운명이 떠돌이의 운명입니다. 어차피 뿌리내리지 못하는 부유의 인생입니다. 환영받지 못할 때 떠나야 구차하지 않겠지요. 늘 하나 기원의 말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소원은 유효합니다.
"가난하더라도 구차하지는 말자!"
정말 그렇습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탈탈 털어버리고 두 손 내미는 지경은 악몽이기도 하고, 삶의 죄악이기도 하다 싶습니다. 무엇이 됐든 구걸하지는 말아야죠.
"사실 난 널 잊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어. 그래? 잘 가! 말은 그랬다지만..."
노랫말이 그랬습니다. 사랑을 하면 모든 노래가 내 마음이듯, 이별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이별노래는 어쩌면 그렇게 내 마음인지요?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입니다. 창자가 끊어지더군요.
"끌려 끌려 넘어가던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가사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통함이 애간장이 녹는 심정만 남았습니다. 한 번 가면 더는 없는 시간입니다. 산다는 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경험 없는 처음입니다. 한 번 가면 그것으로 끝이지요. 해서 순간마다 행복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지만 언어의 유희에 불과합니다. 쓰디쓴 씀바귀 한 움큼 입에 물고서 참 달다 표정 짓는다고 정말 달까요?
오늘도 후회를 하게 됩니다. 퇴근길 참새 방앗간인 편의점에 들러 소주 한 병을 샀습니다. 어째 부족하다 싶었는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마음을 앞세웠지만 결론은 후회입니다. 의지박약이랄까요? 또 모르죠. 술만 느는 요즘이라서 그렇기도 합니다. 칠레의 먼바다에서 북극의 알래스카까지 일 년을 떠도는 고래가 있습니다. 대단한 여정 속에서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기도 하니 정말 위대한 자연이죠. 근데 그거 아시나요? 그 고래보다 더 대단한 술고래도 있어요. 그 고래 중 한 마리가 지금 주절거리고 있습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갑니다. 망설임이 없지요. 마음이 담기지 않았는데 주저하거나 망설일 이유도 없습니다. 망설이거나 주저한다는 건 거기에 마음이 담기기 때문입니다. 돌아본다거나 걸음을 멈추는 건 그만한 사연과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계는 멈췄고 화분의 꽃들은 병든 닭처럼 축 늘어졌습니다. 물을 언제 줬는지? 잊었던 까닭입니다. 부랴부랴 물을 줬습니다. 미안하더군요. 주인이 미친놈처럼 하루를 살다 보니 그랬습니다. 망설이지 않는 시간은 제 길을 가고, 그 갈피에서 갈팡질팡 헤매는 건 마음을 놓지 못하는 미련이 남기 때문입니다. 어쩌겠어요? 심장을 돌여 내어 마음이란 놈을 내팽개친다면 모를까?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나요? 어제와 오늘을 쓱 입 닦듯 안면몰수한다는 게 더 이상하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