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

다 짐?

by 이봄

휴일이 다 저물 때 벌렁거리는 심장을 마주하게 된다. 달콤한 휴식은 쓴 뒷맛을 남기고 거들 먹이며 달아나고야 만다. 세상만사 주고받는 거래라고 일침을 가하듯 달콤함의 끝에는 늘 쓰디쓴 씀바귀 한 아름 선심으로 던져주는 센스. 그래서 스스로 저울의 추를 맞추고야 마는 평범함에 숨겨진 세상의 진리를 본다. 월요병으로 퀭해진 얼굴로 삼삼오오 발걸음을 옮길 때 어기적 어기적 편의점을 들렀다. 백해무익하다는 담배를 한 갑 사고 면도기도 하나 챙겼다. 열흘쯤 방치한 턱수염이 제법 숲을 이루고 헛기침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사내가 거기에 서 있다. 흔적이다. 아프다는 핑계가 여기저기 남겨둔 흔적들이 빼꼼히 고개를 든다. 열꽃이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약물의 거부반응이라 해야 하는지도 모를 흔적도 남았다. 오금이며 팔꿈치 거기다 살이 접히고 닿는 곳마다 땀띠처럼 좁쌀이 돋았다. 긁적긁적 나도 모르게 긁어대던 시간이 고스란히 딱쟁이로 남았다. 시술로 인한 멍울은 낯빛을 바꾸며 터를 잡았고 붓고 저린 발은 오동통 너구리 한 마리로 뛰어 논다. 처방받은 약을 한 움큼 털어 넣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허리춤에 묶어 바느질을 할 수 없듯 필요한 시간은 오롯이 지나야 만 한다. 가로지르는 길이 사방팔방 뚫렸다 해도 어차피 가지 못할 길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비누거품 풍성하게 만들어 덥수룩한 수염에 바르고 깔끔하다느니 매끄럽다느니 장황스레 침 튀기는 면도기로 수염을 밀면 거기 번듯한 사내가 미소 지을 터인데 어쩐지 월요병에 발목 잡힌 발걸음이 무겁다. 지고 인 짐이 어깨를 짓누르고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붙들고 늘어지는 흔적들이 바짓가랑이에 덕지덕지 앉았다. 때로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신파가 구구절절 애틋하기도 하고,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는 심장의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도 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부터 눈물은 피어나고야 만다. 아픔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주는 아픔은 심순애의 배신을 그럴싸하게 포장을 한다. 되지도 않는 공감이 이해를 부르고 돌아서는 순간 마주할 후회가 가슴을 친다. 한 굽이 겨우 돌아서면 의례적인 다짐의 말을 뇌깔이게도 되고 거창하게 종이에 옮겨 그 무게를 더하고는 한다. 비록 작심삼일의 꿈으로 깨어지는 말이라고 해도 그렇다. 생각해 보았다. 살아오면서 숱하게 소환했던 그 '다짐의 말' 하나하나 마다 무게를 갖는다면 지금쯤 쌓인 무게는 얼마나 될까? 예를 들어 말 하나에 100g쯤 된다고 해도 몇천 톤쯤 쌓이지 않았을까? 말 그대로 '다짐'이 '다 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쉽사리 불러오고 쉽사리 보내버린 말들이 돌멩이로 쌓였다. 지키지 못한 흔적들이 상처로 남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말 하나 꾀어내 다짐을 하고야 만다.

우선은 끼니를 꼬박꼬박 챙기겠다 다짐을 했고, 열심히 걷기라도 하겠다고 운동을 약속하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열심히 살겠노라 커다랗게 글씨도 쓴다. 각서여도 좋고, 바람이어도 좋고, 계획서여도 좋다. 다만, 말 하나 가벼이 날아가지 않기를, 그런 다짐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짐이 다 짐이 아니라면 그 어떤 말이라도 행복할 터다.


말끔히 깎은 얼굴이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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