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by 이봄


모든 것은 몰려와 한바탕 난장을 치고 나면 왔던 모습으로 몰려간다. 어제의 싸늘한 바람도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만 꽁무니를 뺐다. 종일 퍼붓다 그치기를 반복하던 비구름도 그랬다. 고산준령의 높다란 골짜기로 몰려가 안개비로 흩어졌는지도 모른다. 열흘 붉은 꽃잎도 없고 비구름도 없다. 모였다가 흩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말만 전설처럼 떠돌게 마련이다.

아등바등 매달려 천 년 세월을 걱정할 일이 없는 거다. 구름으로 모였다가 빗방울로 흩어지면 다시 바다가 되어 철썩인다. 파도가 되고 갯바위를 기어오르다 끝내 푸른 멍울 몸뚱이 가득 아로새기면 또 한 세월이 끝을 맺을 거였다. 한 무리의 노인들이 몰려와 나의 고요를 깼다. 정자의 기왓장 몇 개쯤은 금이 가고, 하도 들썩거려 손가락 하나쯤 빠질 틈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외래종 황소개구리처럼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더니만, 와글와글 다음 목표를 향해 뒷다리에 힘을 주고 펄쩍 뛰어 사라졌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에 화가 쌓여 답답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개구리였다.

장마에 어미의 무덤을 끌어안고 우는 청개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구멍 뚫린 하늘은 장대비를 퍼붓고, 넘실거리는 개울물은 무덤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청개구리는 발버둥 치며 울었다.

"개굴개굴, 어쩌면 좋아요. 엄니?"

닭똥 같은 눈물을 쏟는 청개구리들이 와글와글 정자에 앉아 혼을 뺐다. 정말 그런 거였다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청개구리는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황소개구리의 무리에 가까웠다. 결국은 그들도 태풍으로 몰려왔다가 부챗살 얌전한 바람으로 흩어질 거라서 견디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 젠장! 와글와글 개구리 떼가 징그러웠다.

적당함이 있다면 더는 바랄 것도 없고, 악다구니로 다툴 일도 없을 텐데 세상에서 적당하다는 말처럼 어려운 것도 없을 듯하다.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비가 내리고, 푸른 이파리 가득 햇살이 내린다는 게 따지고 보면 엄청 어려운 일이다. 한쪽에서는 홍수로 난리를 치고 다른 쪽에서는 가뭄으로 허덕이고는 한다. 알아서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도 그 모양인데 덕지덕지 욕심으로 가득한 인간의 일이야 말해 뭣 할까.

적당히 사랑하다가 이별이 찾아오면 또한 적당히 아파할 수 있을까. 마음의 무게나 쏠림은 무엇으로 계량하고 저울질할 수 있을까. 적당히 그리워하고 적당히 구애의 말을 남기면 그는 적당한 감동으로 적당히 달콤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까. 동산에 달 떠오르고 순이네 덕구가 컹컹 짖기 시작하면 철이네도, 용철이네 누렁이도 한 입으로 짖기 시작한다. 동네가 떠나가라 목청을 높이다가 마침내는 골짜기 하나쯤 와르르 무너져야만 입을 다문다. 적당하다는 말은 그래서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의 질주처럼 마음은 그렇게 달린다. 때로는 가속페달을 밟아 속도를 올리면 더는 제어가 불가능한 질주. 그래서 몸이 펄펄 끓는 열병을 앓게도 된다.

졸졸졸 냇물 얌전하게 흐르면 얼마나 좋을까. 산새 한 마리 포르르 날아와 목을 축이고, 가끔은 첨벙 뛰어들어 깃털을 닦아내는 냇물은 수다스럽다고 해도 눈살 찌푸릴 일도 없다. 턱을 괴고 앉아 종일 들여다봐도 미소 지을 터다. 어쩌면 종일 귀를 쫑긋 세우고 몰래몰래 엿듣게 될지도 모른다. 적당하다는 건 그런 것일 텐데 도무지 무게를 잴 수가 없다. 걸핏하면 넘쳐 쏟아지고 과해 값어치가 반감되기도 한다.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의 위험천만한 질주다. 끝내 어느 벼랑 끝에서 활공의 자유를 만끽하려나도 모른다. 네 바퀴 모두 빼버리고서 날자, 날자! 저 푸른 하늘에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이 되려는가. 소나기라도 내리려는지 뭉게뭉게 먹구름이 모여든다. 적당히를 벗어난 수다가 시끄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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