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 잔뜩 피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잡초제거작업을 하면 흔적도 없이 잘릴 처지였지만 꽃들은 그래도 열심히 꽃을 피워내고 있었어. 혹시라도 예초기의 무서운 칼날을 피하는 행운을 만난다면 한 줌의 씨앗을 맺을지도 모르잖아. 그런 희망 하나에 온 여름을 거는 거야. 온통 정신은 꽃을 피우는 것에만 집중을 하고, 뙤약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어. 아침 이슬 한 방울에 목을 축이고 지나는 바람에도 멋진 꽃송이를 뽐내는 데에 여념이 없었어.
"그래, 그랬구나! 나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니 얘기하려 했는데...."
다 소용없는 일이야! 잔뜩 뿔이 나고 심드렁 심통이 나다가도, 몽글몽글 들꽃이 피면 나도 모르게 꽃다발 하나 만들고서 헤벌쭉 웃고야 말아. 복더위를 견디며 꽃송이 피워낸 들꽃에겐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아마 들꽃도 그래, 까짓 거 잘라라 잘라! 얘기하려는 지도 모르겠어. 그저 팔자인가 싶어. 싱겁지 뭐....
날마다 폭염의 기세는 싱겁지가 않은데, 그 복판에 앉아 까맣게 얼굴을 그을리는 나는 싱겁고 심심하지. 짭조름한 땀방울로 한바탕 멱을 감고 나면 하루가 싱거워. 마음씨 좋은 바람이 우렁각시처럼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면 나는 더벅머리 총각이라도 되려나 몰라. 들꽃 몇 송이 꺾어다가 사진을 찍고 그래도 어쩌면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몰라. 웅얼웅얼 주문을 욌어. 꽃을 보면 그래서 사람들이 미소를 짓는구나 하게도 돼. 잔뜩 치민 심통을 봄눈 녹듯 녹여버리는 힘이 있는 거 같아. 실낱같은 희망 하나에 인생을 거는 긍정의 힘이 있어. 바삐 걸음을 옮기다가도 들꽃에 마음을 빼앗겨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추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지. 그게 다 뭐라고.... 다른 이들이야 어떤지 몰라. 적어도 나는 그렇거든.
정자를 오르내리는 계단 옆에 용케도 걸음을 피해 꽃이 피었더군. 꽃마리야. 이름도 참 곱지? 워낙에 꽃송이가 작아서 녀석과 눈을 맞추려면 한껏 몸을 낮춰야만 해. 때에 따라서는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엎드려야만 녀석을 영접할 수가 있어. 그냥 지나치자면야 쓱 밟고 지나가면 그만이야. 어릿어릿 노안이라도 온 나이라면 애초에 눈에 띄지도 않아. 그러니까 '아이쿠 내가 꽃을 밟았구나!' 안쓰러워할 이유도 없는 거야. 그렇게 존재감 하나 없는 꽃인데 녀석을 보려면 허리를 숙이고 그것도 모자라 두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거야. 제왕의 예우를 해야만 겨우 용안을 알현할 수 있어. 격식은 따르라고 있는 거라서 나도 그렇게 예를 갖췄지. 그것은 마치 군신의 예와 같았어. 두 무릎을 공손히 꿇고 이마를 땅에 찧듯 깊이 숙였어.
"아이고야! 제법 예쁜 걸!"
사진에 담으려 애를 썼지만 스마트폰의 카메라로는 그저 희뿌옇게 담길 뿐이야. 어쩔 수 없지 뭐. 바로 꼬리를 말았어.
이름 없는 아니, 모르는 들꽃이라고 하찮게 볼 일은 없는 거 같아. 워낙에 작아 눈에 담을 수 없는 녀석이라지만 결국 무릎을 꿇는 건 궁금함에 이끌린 나라는 거야. 녀석이야 평소처럼 잔디밭에 숨어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으면 그만이야.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면 산더미만 한 사람이 두 무릎을 꿇고 알현의 예를 올리게 되거든. 그러니 하찮다 구박하던 녀석에게 예를 올리는 나는 저 아래 까마득한 미물이 되는 거야. 그러니 뭐가 됐든 하찮고 소용없는 것들은 없어. 깔보고 구박하는 하찮은 내가 존재할 뿐이야.
초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들꽃에 마음을 빼앗기면 나는 녀석의 포로가 되는 거지 뭐. 세상 이치가 그런 거야. 마음을 빼앗기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순종하게 돼. 마음이란 놈도 참 싱겁지. 싱거운 마음이 출렁이는데 어쩌겠어. 결국 나도 이렇게 싱거운 말을 늘어놓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