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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Dec 22. 2023

연인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어찌나 조심스럽던지 숨 한 번 크게 몰아쉬어야만 했다. 잔뜩 눈치를 살피고 혹시나 불똥이라도 튈세라 전전긍긍 애를 태웠다.

"순이야?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고백했을 때 계집애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앙탈을 부렸다. 맞댔던 몸을 비틀어 고쳐 앉고는

"됐네요. 난 별로 보고 싶지도 않았거든!"

무심한 척 말을 뱉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좌불안석 어떤 대답이 나올까 잔뜩 귀를 세웠던 사내놈은 찬바람 쌩 부는 계집애의 대답에 몸이 얼어붙었다. 동장군의 서슬 퍼런 기세보다도 더 차갑고 싸늘했다. 동동 발을 굴렀다. 어쩐다지? 어떤 말로 말을 이어야 할까? 머릿속이 하얘진 사내놈은 발만 동동 구를 뿐 꾹 다문 입을 떼지도 못했다.

애가 탔다. 철 지난 베짱이처럼 노래를 불렀다. 듣는 귀는 이미 단단히 빗장을 채웠는지도 모르는데 목쉰 베짱이만 밤이 깊도록 노래를 불렀다. 때로 비 맞은 중처럼 중얼중얼 고백의 말을 멈추지도 못했다. 하기는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아쉬운 놈이 노래를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위로도 했다.

크게 숨 한 번 들이마시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너는 뺑덕어멈처럼 콧방귀를 뀌어라. 나는 비 맞은 중처럼 염불을 외워도 좋았다. 삭정불 같은 사랑이어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이왕 태울 거라면 숯덩이 하나 남기지 않을 삭정불이 좋았다. 황닥불 같은 맹렬함은 없다 해도 천천히 뭉근하게 타오르다가 하얗게 재 한 줌 남기고 마는 그런 불꽃 하나 가슴에 담는다. 이 계절이 너무 춥지 않았으면, 그래서 서로 어깨 기대도 녹아내리지 않을 뭉근하게 따뜻한  눈사람이라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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