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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wpw Oct 12. 2019

방배동에서

보금자리를 옮기는 일

성수동으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 강남에서 강북으로. 강북에서 강남으로 온 지 24년 만의 이사다. 도봉구 끝자락에서 방배동으로 올 적에는 유치원 다니던 어린이 시절이라 별 기억이 없다. 쌍문 아파트에서 제 집 드나들듯 뛰어다녔던 친구 집들과 멀어지며 펑펑 울고 떼를 쓰진 않았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사는 중학교 1학년 입학을 하며 옆 동네 아파트로 이사를 한 것이었다. 그때도 지은 지 30년이 되어가던 낡은 아파트로 이사하며, 친구들에게 꼭 다시 보자는 다짐을 하고 다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걸어서 15분, 4동에서 본동으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자리가 그때는 어린 걸음으로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처음 이 동네의 낯설었던 풍경이 생각난다. 언덕배기에 있던 빌라에서 쳐다보면 죄 울퉁불퉁했던 거리의 모습. 지하철 역까지 가려면 한참을 내려와 꼬불꼬불 걸어야 했던 모양은 온데간데없고 평평하게 펼쳐진 거리에 낮게 줄지어 지어져 있는 정돈된 도시의 모습. 툭 튀어나온 아파트들 사이에서 도무지 정이 붙지 않을 것 같은 어색함도 이제는 오랜 시간 동안 당연해져 친근하다 못해 포근하기까지 하다.


이삿짐을 정리하며 어린 시절의 유물들을 발견한다. 먼지가 뽀얗게 쌓여 조금만 움직여도 기침을 콜록 인다. 일기장, 편지, 문집, 학생증, 필기노트, 교과서, 프린트물을 모아 둔 파일, 앨범들. 쌓인 먼지에 채 벗겨지지 않은 기억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기타를 사주지 않는 엄마에게 원망을 잔뜩 적으며 철 없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씩씩 대며 썼던 일기장, 두 장을 가득 채워 귀여운 편지봉투에 접어놓고도 결국 전하지 못한 고백편지, 멋 부리려고 만화에서 읽은 시를 따라 써내고 동급생들에게 놀림받았던 문집, 툭 치면 데굴데굴 구를 것 같이 통통하고 동그란 얼굴로 잔뜩 긴장한 채 찍혀있는 첫 중학교 교복의 학생증, 늘 앞에 열 장쯤 필기를 하다 때려치우고 판타지 소설의 마법 이름, 노래 가사, 남자와 여자의 벗은 몸, 잔뜩 장식이 붙은 방패와 칼, 못생긴 드래곤을 삐뚤빼뚤 그려둔 필기노트, 국사 대신 국자로 바뀌어 있는 교과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두어 발짝 떨어져 서 있었던 졸업앨범. 


비단 먼지 쌓인 이삿짐에만 기억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주차장이 된 곳의 낡은 꽃집에서는 좋아하던 여자아이의 생일선물로 노란 꽃다발을 샀었다. 주인 할아버지는 투박한 손으로 다른 장식은 없이 연두색 종이와 투명 비닐로 꽁꽁 묶어서 손에 안겨주었다. 꽃을 사는 일이 그렇게 부끄러울 줄이야. 그 뒤의 아파트 단지 숲길 옆에서는 무서운 형들에게 돈을 뺏겼었고, 조금 더 가다 보면 있는 주민센터 2층에는 늘 소설책을 빌리러 오가곤 했다. 친구들과 공부를 핑계로 늘 떠드느라 바빴던 독서실 건물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고, 길 건너의 낮았던 상가는 커다란 주상복합으로 바뀌어 있다. 1층의 낡은 피시방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의 술집이 있고, 문득 떠오르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방배동을 떠나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방배동은 그러고 보면 참 특이했다. 길 건너로 오른쪽에는 외제차와 유기농 식품, 명품이 당연한 부잣집 사람들이, 왼쪽에는 부모 모두 일하느라 눈 코 뜰 새 없는 집의 사람들이 살았다. 나는 왼쪽에 사는 집의 아이였고, 친구들은 중고등학교를 지나오며 하나 둘 이사를 나가기 시작했다. 만약 인생이 긴 모험의 여정이라면, 이곳은 잠시 들렀다 가는 모험가들의 쉼터 같기도 했고, 더 나은 것을 배우기 위한 학교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방배동에 남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나의 이사는 꼴등 언저리에 있다. 이렇게 오래 이 동네에 살 줄 몰랐다는 엄마의 말에, 나도. 하고 웃었다. 오른쪽에 살던 친구들은 연락이 안 된 지 오래고, 왼쪽에 살던 친구들은 떠나간 지 오래다. 사실, 친구가 별로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먼지 탓에 이어지는 재채기에 콧물을 훌쩍이며 한 박스 한 박스 이삿짐을 쟁인다. 쌓인 먼지 위로 미련 섞인 기억이 올라오는 오래된 것들을 미련 없이 분리수거함에 옮긴다. 여기에 살며 한 번 들춰보지 않아 이토록 오래 쌓인 먼지를 언제 다시 그리워할 셈인가. 어릴 때 친구가 많았더라면, 그때 고백을 했더라면, 거기서 걔랑 싸워봤더라면, 시험을 잘 봤더라면, 동창회를 나갔더라면, 그때 좀 자신감을 가졌더라면. 한 때는 그런 시절이 야속해서 속상했고, 한 때는 그 시절을 아프게 한 사람들을 미워했지만, 이제는 분리수거함에 들어가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작아진 옷들을 헌 옷 수거함에 넣으며 그때 나름 괜찮게 생겼었을 텐데 뭐 그리 쪼다처럼 굴었냐 하고 웃었다. 지금 저 옷 입으려면 반년도 넘게 죽어라 빼야겠구만.


한 때는 청춘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늘 그런 것들을 부러움에 젖어 보곤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 역시 메인 카메라가 돌고 있는 옆의 어느 구석, 스크린에는 잡히지 않는 촬영장 바깥의 어딘가에서 주인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잘생기고 잘 나가는 친구가 으스대며 뽐내는 촬영장 바깥에서, 수줍고 어리숙해하면서도 나름의 시대를 보내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의 투쟁을 했고, 나름의 사랑을 했고, 나름의 시절을 보냈던 이 동네에는 이제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아마 언제 어느 나이에도, 늘 나의 청년시절에 돌아올 자리였던 이 동네를 추억할 것 같다. 누구는 부자동네라고 부러워하고, 누구는 못 사는 동네라고 비웃었던. 그러나 내게는 늘 포근한 보금자리를 지켜주었고 발길 닿는 곳마다 추억을 새겨주었던 방배동을. 마지막 남은 이삿짐에 테이프를 두르며. 안녕. 우리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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