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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노트] 유서를 쓰다, 문득

무엇이 우리를 붙잡고 있을까요?

by 낙원
Israel Kamakawiwo'ole – Over The Rainbow : 폭풍우 뒤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어둠 끝에 피어나는 희망


빛이 완전히 꺼진 밤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다.


후회와 미련, 그리고 익숙함에 대한 두려움. 무엇이 나를 그 고요한 밤 속에 붙잡고 있었을까? 한때는 내 이름은 빛났고, 자신감 있게 살았다. 꿈을 쌓아 올렸고, 작은 성공도 맛봤다. 그런데 인생은 한순간에 다른 얼굴을 내밀었다.


쌓아 올린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뜻하지 않은 파도들이 연이어 밀려왔다. 어떤 벽은 노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그 시간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밝은 모습만 보여왔기에, 약함을 드러내는 게 두려웠다.


결국 세상과 거리를 두고 모든 연결을 끊었다. 집은 차가워졌고, 마음은 텅 비어갔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존재만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느 겨울, 부모님이 찾아왔다. 텅 빈 방, 창밖의 눈, 그 쓸쓸한 풍경 속에서도 말없이 감싸주는 온기가 있었다. 돌아가던 길은 금의환향이 아닌 초라한 귀향이었다.


희망 없는 터널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잃어갔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마지막을 떠올리고는 그조차 미루며 계절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무언가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닫혀있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안개가 걷히듯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장면들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투명해진 마음에 모든 선택과 실수들이 떠올랐고, 오히려 더 깊은 고요로 빠져들었다.


인간은 유서를 쓰는 순간에도 거짓말을 한다.


펜 끝이 종이에 닿을 때마다, 진짜 마음과 다른 말들이 흘러나왔다. '슬퍼하지 말라'라고 적으면서도, 사실은 '기억해 달라'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모순된 마음이 견딜 수 없어 글을 쓰다 멈췄다. 종이 위로 눈물이 번졌다.


죽음을 생각하던 그 순간, 오히려 살아야겠다는 무언가가 피어났다.


끝을 쓰려다 시작을 발견했다.


작은 씨앗들을 심기 시작했다. 어느새 글이 흘러나왔고, 지금은 이야기를 남기며 살아간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과거에 끌려가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앞으로 노를 젓는다. 이 문장이 가슴에 오래 머물렀다.


여전히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흔들리지만 이제는 안다. 고요함이 아무리 길어도, 내 안의 작은 무언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온기와 햇살, 그리고 누군가의 존재가 나를 내일로 이끈다.


끝이라고 생각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용기.


오늘도,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에서.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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