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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노트] 마음대로 되는 것

그래도 살아가는 이유

by 낙원
볼빨간사춘기 - 나의 사춘기에게: 애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다"는 마음을 담아

혼자라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에, 사실 누군가는 내 곁에 있었다.

그 지혜가 닿지 않던 계절이 있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던 그 시기에,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나는 그들을 밀어냈다. 부끄러움과 자존심이 뒤엉켜 있었다.

얼마 전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때 정말 걱정됐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누군가는 계속 내 곁에 있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가족이 있었다.

10화에서 썼던 그 어두운 시절, 부모님이 찾아오셨던 날이 떠올랐다. 텅 빈 방, 창밖의 눈, 그 쓸쓸한 풍경 속에서도 말없이 감싸주는 온기가 있었다.

하지만 때론 가족이기에 더 아팠던 순간들도 있었다. "언제까지 이럴 거니?"라는 말에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던진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이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밤들이 있었다.

아직도 그 질문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동창회에서 성공담을 늘어놓는 친구들 사이에서 숨고 싶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요즘 뭐 해?" 같은 인사말조차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다. 33살이라는 나이가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기꺼이 부담해주시는 건 결국 가족이다.

친구와는 마음을 나누지만, 가족과는 숨을 나눈다.

뿌리가 있으면서도 부유했다.

이동진 평론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태어난 것도 내 마음이 아니었는데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멀리 보려다 발을 헛디뎠다. 오늘만 본다면 그냥 수습할 거 수습하고 다른 거 하면 그만인데.

10화에서 썼던 그 시절, 부모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너무 애쓰지 말아라. 쉬어가며 해도 된다."

그 말에 얼어붙었던 무언가가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나는 늘 매번 목숨 걸듯이 해야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최선을 평생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부모님이 나 때문에 포기하신 것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여행도, 취미도, 심지어 새 옷 한 벌도 미루시면서 내 꿈을 지켜봐 주시는 모습에 감사하면서도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있음에 고맙고 늘 자랑스럽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잘해왔다는 것.

가족이 있다는 것은 조건 없이 나를 받아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도 감싸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혼자가 아니라는 것.

한 발 물러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그랬다. 아름다운 것이 참 많은 세상이다.

이제는 안다. 손을 내밀면 잡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완벽하지 않은 모습도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홀로 서려 했던 모든 시간이, 결국 함께 있기 위한 준비였다.

오늘도, 천천히 이어가는 삶의 낙원에서.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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