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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노트] 흩어진 점, 다시 선이 되던 밤

시간이 멈춘 자리, 우정은 다시 흐른다.

by 낙원
Ludovico Einaudi – Oltremare : 점에서 선으로, 그리고 더 깊은 이야기로 확장되는 우리의 성장


흩어진 점을 선으로 잇는 일을 어쩌다 멈췄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하다. 점과 점 사이, 그 공백은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고, 겨울이 다섯 번이나 바뀌는 동안 차곡차곡 쌓였다. 나는 깊은 어둠 속에서 모든 인연의 선을 끊고, 점으로만 존재했다. 전화기는 꺼두었고, 말의 문도 닫혔다. 상처받지 않으려 외로움을 택했지만, 결국 그 어둠 속에서 펜을 들고 마지막 인사를 적으려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꿈꾼 삶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는 걸.


그 깨달음이, 내 안에 첫 번째 선을 다시 긋는 시작이었다.


“저녁 뭐 먹을까?”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에게 건넨 첫마디는 무심할 만큼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포옹이 먼저였다. 친구의 손길이 내 어깨를 두드리고, 웃음이 번졌다.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이 그 짧은 순간에 오갔다. 가슴 깊은 곳의 얼음장이 천천히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5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 공백은 결코 단절이 아니었다. 연결이 끊어진 게 아니라, 잠시 접혀 있었을 뿐. 같은 시기에 인격이 자란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나도 서로의 눈빛과 말투에서 익숙함을 찾았다. 대화는 마치 책의 접힌 페이지를 다시 펼치는 것처럼, 어색함 없이 이어졌다.


“한우는 필요 없고 막창에 소주면 된다. 좋은 이야기가 있으면 베스트고.”


친구의 농담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여전히 소박한 취향, 진솔한 대화, 낭만을 아끼는 마음까지-마치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 각기 다른 가지로 뻗은 나무 같았다.


그날의 대화 중,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좋은 사람이란 과거에 좋은 일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 오늘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야. 친구도 마찬가지야. 과거에 친구였다고 지금도 친구라는 보장은 없지. 친구 관계도 노력이 필요해.”


내 말에 친구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돌아올 것을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모든 연락을 끊었을 때도, 그들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내가 다시 선을 잇기 시작하자, 친구들은 언제든 이어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각기 다른 학교에 다녔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났던 친구들. 그때는 몰랐다. 함께 성장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성인이 되어 만나는 인연과는 또 다른, 청춘의 순수한 연결이 얼마나 단단한지.


어둠 속에 홀로 있을 때, 나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오해였다. 친구들은 그저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간간이 내 소식을 묻고, 언제든 복귀할 자리를 남겨두었다. 친구란, 빛이 강요되지 않는 공간이다. 어둠조차 함께 품어주는 곳. 진짜 우정은 그런 것임을, 이제야 알겠다.


삶의 언덕을 넘으며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소식을 놓쳤다. 하지만 다시 만난 그 순간, 눈빛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말이 오갔는지. 우리는 흩어진 점이었다. 각자 흩어져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선으로 이어져 있던 존재들.


청춘의 우정은 오래된 보물상자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해지는. 요란하게 반짝이지 않아도, 오래도록 빛이 바래지 않는. 세월이 지나 다시 열어보면, 놀랍게도 그대로인 것. 어쩌면 그래서 우정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글을 쓴다. 어둠을 지나, 이제는 누군가에게 다가가려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독자로 친구들을 떠올린다. 내 이야기에 웃고 울어줄, 가장 따뜻한 독자들을.


세월이 흘러도, 다시 만나면 똑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인생의 커다란 위로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진짜 우정은 그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않는 단단한 다리가 된다.


흩어진 점이 다시 선으로 이어지자, 우리 사이에 꽃이 피었다.
시간도, 세월도, 아픔도 지우지 못한 그 자리에, 다시 꽃이 피었다.

여름, 다시 피어난 우정이 오래도록 지지 않기를.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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