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러만 보면서 운전하면 사고 난다.
지난 1월, 벽난로 불빛이 일기장 페이지 위로 붉게 번졌다. 교실 낙서, 미뤄 둔 건강검진, 갈림길에서 맴돌던 발자국, 멀어진 연인에게 던진 무심한 말까지—‘더 잘할 걸’이란 뒷맛이 페이지마다 스며 있었다. 마음먹기에 따라 삶은 잿빛 후회가 되기도, 같은 장면이 금빛 감사로 반짝이기도 한다는 걸 그날 처음 실감했다.
특히 대학 시절 연인과의 이별이 적힌 쪽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때 나는 모든 걸 망쳤다고 믿었다. 사소한 말다툼이 강물처럼 번져 결국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태워 버렸다.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그 실패가 네 전부를 규정하진 않아”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 이별이 가르쳐 준 소통의 언어가 오늘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빚어 주었으니까.
얼마 전, 전신마취 수술 뒤 회복실 천장의 하얀 불빛 아래에서 마음이 맑아졌다. 길은 이어지고, 내가 쥔 감정이 시야를 넓히거나 좁힌다는 사실이 또렷했다.
수술 전 밤, 모든 부작용을 검색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만 그렸다. 막상 마취제가 스며들자 뜻밖의 평온이 찾아왔다. 결과를 바꿀 수 없다면 믿고 맡기는 수밖에. 작은 항복이 오히려 자유를 주었다. 상처가 아무는 시간을 재촉할 수 없듯,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스키 선수는 눈앞 장애물이 아닌 다음 게이트를 본다. 나 역시 과거만 응시하면 발이 엉켰지만, 시선을 앞으로 돌리자 얼어붙은 길이 다시 이어졌다.
첫 직장에서도 그랬다. 초반 실수를 감추려다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완벽해 보이고 싶어 실패를 인정하지 못했고, 그 고집이 파문을 키웠다. 덕분에 두 번째 직장에서는 다른 길을 택했다. 실수를 솔직히 불러내고 배움의 기회로 삼으며 전진에 에너지를 쏟았다. 거울 속 후회보다 앞 유리창 너머의 길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백미러는 필요하지만 운전의 전부가 아니다. 일기장, 사진첩, 수술 자국까지—과거의 조각을 인정하자 어깨가 한결 가벼웠다. 매일 10분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과거가 떠오르면 교훈만 쓱 훑는다. 아직 낯선 도로지만, 새벽 이슬이 햇빛에 반짝이듯 실수도 조용히 빛을 품는다.
이 기록 역시 내일의 백미러에 비칠 한 장면일 뿐이다. 다른 선택도 가능했지만, 오늘은 이 글을 택했다. 중요한 건 앞으로 펼쳐질 여백이 끝없이 넓다는 것.
나는 백미러를 잠시 살피고 핸들을 단단히 잡는다. 겨울 바람이 차갑게 불어도 속도를 높인다. 과거는 낮은 목소리로 교훈만 남긴 채 멀어지고, 나는 그 말을 가벼운 짐처럼 트렁크에 싣는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다음 이정표 앞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겠지.
#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