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기다림, 깊이를 묻다
비가 막 그친 공사 현장.
웅덩이 하나가 어설프게 하늘을 베껴 두고 있었다.
낡은 낚싯대를 드리운 노인은 잔잔한 수면만 오래 바라보았다.
돌아오지 않을 대답을 던지듯, 그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흙탕물은 갈빛인데, 그의 기다림은 푸르다 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누군가를―오롯이 나를 품어 줄 한 사람을―
물고기 없는 웅덩이 앞에서 기다려 온 건 아닐까.
언제 나타날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이름.
텅 빈 자리에 줄을 드리우고 “오늘도 없구나.” 중얼대다
돌아서온 날들이 겹겹이 쌓였다.
기다림이 잿빛으로 번질 즈음,
어느 저녁 정류장 가로등 아래 서 있던 낯선 뒷모습 하나가
희미한 푸른 빛살처럼 마음을 스쳤다.
청색 ― 희망과 쓸쓸함이 동시에 깃든 빛.
차갑고 서늘하지만 끝없이 깊어,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경계를 잃는 저녁처럼 더 넓어지는 색.
노인의 낚싯대 끝에서 물결은 일지 않았지만,
그 고요한 기다림이 이미 머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잡으려는 손보다 머무는 마음이 더 단단했다.
보금자리 같은 사람을 찾기 전,
내 안에 먼저 머물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오늘, 웅덩이 곁에 작은 낚싯대를 내려놓는다.
물고기가 오지 않아도 괜찮다.
맑아질 때까지, 파문을 빚지 않는 법을 연습하려 한다.
청색이 서서히 잿빛을 지우고 번져 온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더는 공허가 아닌,
나를 단련하는 깊이로 남는다.
그 깊이만큼, 언젠가 다가올 이름에게
조금 더 선명한 푸른 빛으로 닿기를 바라며.
#낙원
모바일 게임 〈서울 2033〉 속 대사 중— "기약 없는 기다림은 무슨 색인가요?"—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